우리가 실험실에서 사는 이유

한겨레 입력 2021. 10. 20. 18:16 수정 2021. 10. 20. 18: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숨&결]

[숨&결] 양창모|강원도의 왕진의사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거대한 실험실이다. 실험실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 28만명이 살고 있다. 실험의 제목은 ‘저선량 방사능이 과연 암을 유발하는가’이고 2년 전쯤에 시작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춘천은 서울에 비해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능 수치가 대략 3배 정도 높다(서울 평균 119nSv/hr, 춘천 323nSv/hr). 이 사실을 발견한 춘천 시민들은 5년이 넘게 매달 모임을 가지며 이를 공론화하는 활동을 했다. 결국 뉴스에 보도가 되면서 2019년 4월 춘천시는 정책간담회를 개최하게 되지만, 간담회는 질문을 시작하는 자리가 아니라 질문이 끝나는 자리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센터장이 ‘(춘천처럼) 저선량 방사능이 높은 곳의 발암성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못 내렸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근거해서 춘천시는 간담회 이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간담회는 그저 행정 결정에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도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간담회 참석자 중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유일한 전문가라고 할 한림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의 얘기는 전혀 달랐다. “저선량 방사능에서도 암 발생률은 노출량에 비례해서 직선적으로 증가한다. 이 결론에 대해 의학계 안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의 말은 나만 들었던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센터장과 춘천시 공무원도 모두 들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후 아무런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았다. 교수의 말대로라면 춘천 시민 중에서 50명 정도는 단지 춘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특히 아이들이 문제다. 2015년 스위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200nSv/hr’(200나노시버트 퍼 아워, 시간당 200나노시버트) 이상에 노출된 아이들은 백혈병의 위험성이 두배 늘었다. 2017년을 기준으로 춘천시에 살고 있는 3만7천여명의 아이들이 10년 동안 춘천에서 지내게 되면 그중에 약 12명 정도가 추가로 백혈병에 걸리게 된다는 결론이었다.

예방 조치를 하지 않은 춘천시와 원자력안전기술원의 무책임 덕분에 춘천은 이제 거대한 실험실이 되었다. 향후 수(십)년 후에 실제로 춘천 시민들 중에 암 발생률이 증가하는지를 손 놓고 보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실험으로 인해 암이 발생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에게는 이 실험을 막지 못한 어른들이,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월성원전에서 25년간 방사능 누출이 있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과 관리·감독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방사능 누출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민간조사단이 조사를 하면서 사실이 밝혀졌다. 2019년 월성 1호기의 현장 담당자로부터 방사성물질이 누출되고 있다는 보고를 이미 받았으나 원안위가 묵살했다고도 한다. 위험을 안전하게 관리하라고 세금으로 준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시민들을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한달여가 지났지만 관련자들에 대한 중징계나 책임을 물었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춘천 간담회에서 발언했던 센터장도 1년 후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책임지지 않는 그들이 계속 책임자의 위치에 있다면 사회는 잔혹한 실험실이 될 것이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는 사회의 시민들은 결국 자신의 삶을 하나의 실험이 되게 한다. 그것이 내가 춘천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다. 이제 월성원전의 누출 사고도 점점 뉴스라인에서 사라져간다. 어제의 뉴스는 오늘의 지면에서 사라지면서 죽는 게 아니라 세상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할 때 죽는다. 죽어가는 뉴스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행동이고, 그로 인해 살아나는 것은 뉴스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다. 뉴스는 끝났을지 모르나 책임에 공소시효는 없다. 책임을 끈질기게 묻는 시민들이 있는 한.

Copyright©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