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K-정치

송용창 입력 2021. 10. 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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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초대박을 치면서 외신들이 K-드라마 흥행 이유를 분석하느라 우리보다 더 요란을 떨고 있다.

한국의 작가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스릴 넘치는 한국의 정치 드라마와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K-드라마의 상상력은 그러나 여전히 K-정치보다 한 수 아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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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냐 감옥이냐'  대선 서바이벌 게임
블록버스터 영화 뺨치는 대장동 의혹     
드라마보다 더 자극적인 부끄러운 현실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초대박을 치면서 외신들이 K-드라마 흥행 이유를 분석하느라 우리보다 더 요란을 떨고 있다. 여러 요인이 거론되지만 이들이 놓친 게 하나 있다. 한국의 작가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스릴 넘치는 한국의 정치 드라마와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유명한 광고 카피처럼, 현실 정치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막강한 상대이다 보니 작가와 제작자들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번 대선전만 해도 서바이벌 게임 장르의 서스펜스를 능가한다. 여야는 서로 상대의 유력 주자들을 향해 “청와대가 아니라 감옥에 가야 할 사람”이라며 감옥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를 단순한 정치 공세로만 치부할 수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각각 대장동 의혹과 고발사주 의혹 등에 대한 수사 결과에 따라 범죄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사 당국이 객관적으로 수사할 수 있을지, 유력 주자를 기소할 수 있을지 등 현재로선 모든 게 불확실하다. 선거 결과가 이들의 운명을 가를 가능성이 높다. 대선에서 이기면 청와대로, 지면 감옥으로 말이다. 한마디로 대선 판이 '청와대냐 감옥이냐'라는 건곤일척의 판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되는 모습이다.

그뿐이랴. 미스터리 스케일 면에서 이번 대선에 버금가는 추리물이 있을까. 수천억 원대 개발 이익을 놓고 돈잔치와 복마전이 벌어진 대장동 의혹의 등장 인물을 봐도 전현직 국회의원, 대법관, 검찰총장, 민정수석, 대선 후보, 언론인 등 초호화 멤버들이다. 이재명 후보 측이 수세에 몰리다 곽상도 의원 아들 퇴직금 50억 원으로 국민의힘이 역공을 받는 등 전개 과정도 롤러코스터 뺨치게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결말을 알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미스터리이다 보니 스포일러도 없다. 최종 설계, 최종 보스, 거래의 대가 등을 두고 수사는 더디고 정치적 공방만 난무해 전 국민이 탐정이 돼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조폭 연계설까지 나오면서 누아르 장르까지 결합됐다. 최근 국회 국감장에선 조폭 재소자 진술을 근거로 한 폭로가 나왔다가 반나절 만에 허위로 밝혀지는 소동도 벌어졌다. 코믹 요소마저 가미된 것이다. 이처럼 다채로운 장르를 현란하게 넘나들면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공방에다 폭로와 반전의 상황 전개, 복수와 증오의 언어들이 매일 뉴스를 타고 전해지니, 작가들이 어떻게 경쟁력을 키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실을 따라잡기 위해선 더 자극적인 상상력과 플롯 비틀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의 공감을 얻은 요인의 하나로 리얼리즘이 꼽힌다. 데스 게임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주요 캐릭터들이 빈부격차로 얼룩진 현대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할리우드의 슈퍼 히어로 영화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바로 이 K-드라마의 리얼리즘이 현실과의 경쟁에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K-드라마의 상상력은 그러나 여전히 K-정치보다 한 수 아래다. 예컨대 "50억 원은 산재 위로금"이라거나 “50억 원은 푼돈”이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현실과 비교하면 오징어 게임의 판돈, 즉 456명의 목숨값 456억 원은 리얼리티가 한참 떨어지는 설정이다. 10년 전에 구상했던 시나리오이다 보니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 결과인 셈이다.

K-드라마를 성장하도록 자극한 원천은 K-정치다. K-드라마 흥행 요인을 분석하는 외신들은 여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 진실을 알려주고 싶지 않다. 몹시 부끄럽기 때문이다.

송용창 논설위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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