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도전을 기다리는 농촌에서

한겨레 입력 2021. 10. 20. 17:16 수정 2021. 10. 2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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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들 귀농서신]아빠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청년들이 귀농하면 '농촌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청년들의 장점을 살려 농촌에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창업 지원책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소득만 보장된다면 기꺼이 '내려간다'는 청년들이 많을 텐데.

[엄마아들 귀농서신] 조금숙|괴산서 농사짓는 엄마

잦은 비에 바람까지 덩달아 나부대더니 들깨가 많이 쓰러졌다. 까맣게 썩은 모습에 마음도 새까맣다. 구역질이 올라오도록 공부하느라 힘들었으니 그저 한참은, 아무 생각 없이 쉬면 좋겠다고 했는데, 드라마를 보면서도 앞으로 할 일을 궁리하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무언들 못 하겠니. 요즘 희망이 하나 생겼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소득, 기본주택이 되면 정말 좋겠다는 희망. 나 못지않게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네 아빠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단다. 전해준다.

“지금 농촌은 가물거리는 촛불처럼 소멸되어간다. 청년들은 모두 서울로 떠나가고 이제 칠팔십대 노인들만 남아 겨우 농촌을 지탱하고 있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 기름졌던 농토는 이제 버드나무와 잡초가 무성한 척박한 땅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 서른다섯 가구인 우리 마을에, 60대 중반인 아빠와 엄마가 가장 젊은 세대에 속한다. 이대로 10년 정도 지나면 마을은 어떻게 될까. 연로한 주민들 절반 이상이 돌아가시어 마을에 남아 있는 분들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농사지으시는 분들은 더 없겠지.

농촌에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농촌은 없어진다. 농촌이 사라지면 도시는 어떨까. 먹거리는 어떻게 하나, 수입하여 먹으면 될까? 사시사철 곡식이 익어가면서 변화하는 농촌의 그 아름다운 풍경은 또 누가 지키나? 생각만 해도 삭막하다. 그래서 네가 진지하게 온다고 했을 때 참 반가웠다. 농촌을 살려야 한다. 농촌에 청년이 돌아오게 해야 한다. 농촌에서도 청년들이 아무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농촌의 현실은 어림없다. 농촌에 사람이 없어지니 무슨 일이든 힘들어. 청년들의 ‘귀농’이 어렵다고들 하는 건 이유가 있다. 그래서 아빠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청년들이 귀농하면 ‘농촌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청년들의 장점을 살려 농촌에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창업 지원책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농촌 기본소득이라면 청년들이 농촌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소득만 보장된다면 기꺼이 ‘내려간다’는 청년들이 많을 텐데. 너의 글을 보며 지금 도시에서 청년들이 겪는 많은 어려움이 ‘모여 있음’에서 비롯됨을 생각해봤다. 꼭 모여 살 수밖에 없을까 생각해봤다. 병원, 교육, 문화 전 분야에 걸쳐서 농촌에는 부족한 게 많지만, 가장 먼저 풀 실마리는 고정소득에 있다. 농촌에서 고정소득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 청년들이 내려오지 않을까.

그렇게 청년들이 오는 곳이 되면 많은 게 달라진다. 스스로 젊다 생각했을 땐 몰랐는데, 아이티(IT)에 대한 이해도와 디자인, 문화, 각종 콘텐츠 및 마케팅 감각 등은 ‘노인’이 따라가기 벅차더라. 기존 농촌에 이런 청년들의 장점을 접목하면 전에 없던 길이 열릴 거다. 청년들이 농촌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청년들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펴는 중앙·지방정부가 필요하다.

20년 전엔 코웃음 쳤던 ‘한류’가 이제는 몸으로 느껴진다. 더불어 한국의 먹거리 수출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이름하여 케이(K)푸드. 그렇게 먹거리의 중심이 되는 우리 농수산물도 전세계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농수산물 수출에도 청년들의 아이티 기술과 콘텐츠 역량이 필요하다. 아무리 뜯어봐도 우리나라 청년들의 문화적인 역량은 세계적이다. 농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세계적인 수출 상품으로 발전시키는 데 우리나라 청년들의 문화적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현재의 노령화된 농촌 역량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농촌의 새로운 사업 파트너로 우리 청년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네가 온다니 반가웠다.

너뿐 아니라 많은 청년이 농촌에 언제든 올 수 있다면 좋겠다. 도시의 논리처럼 적자생존하는 농촌이 아니라, 넉넉한 인심의 농촌이면 가능하겠다. ‘도시살이에 지치면 언제든 내려와 살아도 좋다’, 언제나 아빠가 너에게 해주는 말이었지. 다른 청년들도 꼭 그러면 좋겠다. 언제든 내려가 살 수 있다는 생각의 씨앗을 가슴속에 잘 심어 두었으면 해. 도시살이에 지치고 힘들면 다르게 살아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면 좋겠다. 그래서 농촌 기본소득과 농촌 창업지원 정책이 자리 잡아야겠다는 마음을 전한다. 새로운 도전을 기다리는 농촌이 되면 나라가 직면한 많은 문제의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너의 도전을 기다리는 괴산에서, 아빠가 씀.”

그러게 기본소득이나 귀농 지원이 활발하면 귀농하려는 아들을 둔 엄마 아빠가 한시름 놓을 텐데 말이다. 요즘 한창이어야 할 고추잠자리가 보이질 않는다. 갑자기 늘어난 가을 모기랑 관련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날씨는 왜 갑자기 추워졌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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