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기존 잠수함서 전술탄도미사일 발사..'수위조절' 고심 흔적
북 "신형 잠수함발사탄도탄 시험발사 성공" 의미·정세 함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과학원은 “19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탄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20일 <노동신문>이 2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북한 국방과학원은 “5년 전 첫 잠수함발사전략탄도탄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여 공화국의 군사적 강세를 시위한 ‘8·24영웅함’에서, 또다시 새형(신형)의 잠수함발사탄도탄을 성공”시켰다고 <노동신문>은 전했다. ‘신형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에스엘비엠)’을 ‘기존 잠수함’을 활용해 발사했다는 뜻이다.
우선 “5년 전 첫 잠수함발사전략탄도탄을 발사한 ‘8·24영웅함’에서”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쪽은 5년 전인 2016년 8월24일 함경남도 신포 앞바다에서 첫 에스엘비엠인 ‘북극성-1형’을 시험발사했는데, 그때 발사 플랫폼으로 쓴 잠수함을 이번에 재사용했다는 것이다. 첫 발사일을 따서 ’8·24영웅함’으로 불린 이 잠수함은 고래급(신포급·2000t)이다. ‘8·24영웅함’은 길이가 67m로 일반 고래급(길이 100m)보다 작고 발사관이 1개뿐이다. 실전 배치되지 못한 ‘시험용 잠수함’으로 평가된다.
’8·24영웅함’ 재사용은, 북쪽이 오랜 노력에도 전략 에스엘비엠을 탑재해 실전 기동하며 발사할 잠수함 개발에 아직 성공하지 못했으리라는 추정으로 이어진다. <노동신문> 2019년 7월23일치는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돌아보셨다”며 “동해작전수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작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한·미 군정보당국은 이 잠수함의 진수식이 지금껏 없었다고 파악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해군 3000t급 잠수함의 경우, 조선업체가 선체를 완성하면 2년 뒤 진수식을 하고 3년간 시운전 평가기간 뒤 해군에 넘겨준다. 이후 해군이 전력화 과정을 거쳐 실전배치한다.
북한은 지금껏 실기동 잠수함에서 에스엘비엠을 발사한 적이 없으며, 이런 사정 탓에 국제사회에서 ‘에스엘비엠 운용국’으로 공식 인정받지 못했다. 앞서 정부는 9월15일 독자 개발한 에스엘비엠을 도산안창호함(3000t급)에 탑재해 수중발사에 성공한 뒤 “대한민국이 에스엘비엠을 잠수함에서 발사한 세계 7번째 나라”라고 발표했는데 앞선 6개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인도)에 북한은 넣지 않았다. 잠수함 발사에 성공했다는 북쪽 발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북쪽이 이번 시험발사를 전한 <노동신문> 보도문에 “5년 전 첫 잠수함발사전략탄도탄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강조한 건, 에스엘비엠과 관련한 남쪽과 신경전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풀이된다.
둘째 신형 에스엘비엠의 제원과 성능이 중요하다. 한·미 군당국은 이 미사일이 “정점 고도 60km로 590km를 비행”했다고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9일 합동참모본부는 “에스엘비엠으로 추정되는 미상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라고 판단했다. 요컨대 미국을 겨냥한 전략 탄도미사일이 아닌, 북한 주변 한반도와 일본 정도를 염두에 둔 전술 탄도미사일이라는 뜻이다. 지대공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를 에스엘비엠으로 개량했으리라는 추정이 많다.
북쪽은 그동안 에스엘비엠 시험발사 때 ‘북극성-1형’(2016년 8월), ‘북극성-2형’(2017년 2·4월), ‘북극성-3형’(2019년 10월)이라 불렀는데, 이번에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는 “새형의 잠수함발사탄도탄”에 ‘북극성’ 호칭을 사용하지 않은 사실도 짚어볼 대목이다. 북극성 계열이 ‘전략 탄도미사일’이라면 이번에 시험발사한 것은 ‘전술 탄도미사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북극성-3형’ 시험발사(2019년 10월2일)를 “자위적 국방력 강화의 일대 사변”이라 자찬한데 비해 이번엔 “나라의 국방기술 고도화와 해군의 수중작전 능력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다소 실무적인 평가를 내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요약하면, ‘기존 잠수함’을 활용한 ‘단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의 정치군사적 의미는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북-미 정상회담 합의와 미국의 제한선(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쪽의 이런 선택은, 김정은 위원장이 거듭 강조한 “서로에 대한 존중, 이중적인 태도와 적대시 관점·정책 철회”라는 이른바 ‘선결조건’과 관련한 비타협적 태도를 짐짓 강조하면서도 ‘수위 조절’을 함께 고려한 듯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9월 다섯 차례의 각종 미사일 시험발사 불참에 이어 이번에도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의도적인 거리두기’로 읽힌다.
다른 한편에선 이번 에스엘비엠 시험발사를 ‘불확실성 해소’로 해석하는 기대섞인 분석도 있다. 한·미 정부는 올해 북쪽이 취할 최대치의 군사행동을 ‘전략 에스엘비엠 시험발사’로 예상해온 점을 염두에 둔 진단이다. 북쪽이 2017년 11월29일 ‘화성-15형’ 시험발사를 “국가 핵무력 완성”이라 선언하곤 2018년부터 대화·협상으로 급선회한 선례에 비춰 이번에도 ‘대화의 장으로 나올 준비가 됐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저도 그런 해석이 맞고, 그런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19일 청와대 관계자의 답변이 이에 해당한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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