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꼭 쥔 푸틴 거짓말에도..유럽이 러시아에 목 매는 이유

송지유 기자 2021. 10. 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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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량 늘리겠다"더니 며칠 만에 입장 바꾼 러시아, 푸틴 입 따라 천연가스 가격 출렁..1년새 5배 급등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뉴시스

"유럽이 요청하면 언제든지 천연가스 공급을 늘리겠다." (지난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다음달 유럽으로 보내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동결하겠다." (지난 18일, 러시아 국영에너지기업 가즈프롬)

세계 최대 천연가스 보유국인 러시아가 에너지 자원을 무기로 유럽을 쥐락펴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푸틴 대통령은 에너지 대란을 겪는 유럽에 천연가스를 충분히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완전히 상반된 결정으로 국제 사회를 당혹감에 빠뜨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러시아 국영에너지기업인 가즈프롬이 다음달 우크라이나를 관통해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동결하기로 결정하자 11월 인도분 천연가스 가격이 메가와트시(MWH)당 104유로(약 14만2000원)으로 하루 만에 18%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에서도 11월 인도분이 100만BTU당 2.71파운드로 15% 넘게 올랐다.

최근 1년 새 천연가스 가격이 5배 가까이 급등하면서 유럽에서 에너지 대란이 확산되자 구원투수로 자진 등판하겠다는 러시아 대통령 발언에 천연가스 시세가 안정을 되찾았는데 며칠 만에 거짓말로 드러난 셈이다.

오히려 최근 러시아의 공급량이 감소했다는 분석이 잇따라 제기됐다. 글로벌 에너지정보업체 ICIS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서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관의 하루 평균 공급량은 지난달 302㎥에서 이달 261㎥로 줄었다. 블룸버그 역시 가즈프롬 데이터를 인용해 지난 8월부터 이달까지 3개월 연속 유럽으로 보내는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량이 감소했다고 전했다.

유럽, 천연가스 러시아 의존도 43% 넘어
세계 최대 천연가스 보유국 러시아가 다음달 유럽으로 보내는 공급량을 동결한다고 밝혔다. /AP=뉴시스
천연가스는 냉난방뿐 아니라 화학제품·유리·종이 등 가공에도 반드시 필요한 원료다. 특히 유럽은 전기생산 원료의 평균 20%를 천연가스로 쓰는데 '탄소중립' 선언으로 이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주요 국가별로는 네덜란드가 59%로 가장 높고 아일랜드(51%), 이탈리아(45%), 영국(36%) 등 순이다. 문제는 유럽 천연가스 전체 수요의 43%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촌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러시아는 세계 천연가스 공급의 25%를 담당한다. 푸틴 대통령 말 한마디에 글로벌 가스 선물시장이 출렁이는 이유다. 에너지 전문가인 티에리 브로스 파리정치대 교수는 "유럽의 가스 위기로 러시아의 절대적 영향력이 확인됐다"며 "유럽의 정전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푸틴뿐"이라고 말했다.

유럽 각국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공을 들이는 중에 대규모 풍력발전소가 설치된 북해의 바람이 멈춘 것도 천연가스 수요 폭증 요인으로 꼽힌다. 동절기를 앞둔 상황에서 유럽 천연가스 재고 수준이 10년 내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가정에서 쓰는 전기료는 최대 5배 폭등했다. 영국·네덜란드·스페인 등의 경우 집권당 지지율이 흔들릴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이 옳았다"…러시아 천연가스 공급 안 늘리는 이유는
러시아 우스트루가에 있는 천연가스 수송관 '노르트스트림2'/사진=블룸버그
상황이 이런데도 러시아가 공급을 늘리지 않는 것은 유럽을 관통하는 러시아의 가스수송관 '노르트스트림2'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노르트스트림2는 러시아 서부에서 발트해 해저를 지나 독일 북부로 연결되는 연간 공급량 최대 550억㎥의 천연가스 수송관이다. 지난 2018년 이 수송관 공사가 완료됐고 가즈프롬이 가스 주입까지 마친 상태다.

하지만 정권 교체기인 독일의 사용 승인이 늦어지자 이에 천연가스 공급을 동결해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푸틴은 지난 2009년 우크라이나를 거치는 천연가스관을 열흘 넘게 잠근 적이 있다. 국제 전문가들은 승인 시점의 문제일 뿐 조만간 가동을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르트스트림2가 승인되면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주요 4개 경로(독일·벨라루스·우크라이나·터키)의 천연가스 수송관이 완성돼 푸틴이 유럽의 에너지 시장 지배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푸틴이 천연가스를 무기로 경제뿐 아니라 정치·외교·안보 등 이슈에서도 유럽 등에 압력을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연가스 공급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간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최근 천연가스 가격 폭등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으며, 유럽은 러시아의 볼모가 될 것이라는 미국의 주장이 사실상 확인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7월까지 '노르트스트림2'에 반대해왔으며,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용인하면서도 러시아가 새 가스관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경우 추가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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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유 기자 cli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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