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권력형 성범죄 알고도 쉬쉬한 영국 명문대들

김혜리 기자 2021. 10. 2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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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국 옥스퍼드대학 전경. 옥스퍼드대 홈페이지


옥스퍼드대학, 케임브리지대학 등 영국 명문대에서 교수들이 권력형 성범죄를 일삼았지만, 학교 측이 학생들의 고발을 무시해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알자지라는 19일(현지시간) 영국 명문대들이 교수들의 성범죄·권력남용 등에 대해 알면서도 피해 학생들을 보호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알자지라 탐사보도팀이 2년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글래스고대, 워릭대 등 영국의 유명 대학들은 교수들의 권력형 성범죄, 성차별적 언행, 강압적 통제, 음주로 인한 부적절한 행동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학생들의 문제제기를 꾸준히 무시해왔다. 가해자는 교수, 피해자는 대학원생이었던 경우가 다수 발견돼 권력관계가 범죄에 작용해온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학들은 교수의 범죄 사실을 알고도 가해자들을 처벌하기보다 고발을 묵살하는 식으로 일관해왔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알자지라는 대표적 가해자 사례로 앤디 오차드 옥스퍼드대 교수를 들었다. 중세영어인 앵글로색슨어를 가르치는 오차드 교수는 90년대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고 2013년부터 옥스퍼드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오차드 교수는 학문적 명성은 높았지만 대학원생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난야 카비르 킹스칼리지 교수는 “중세시대 학자로 평판이 좋았던 오차드 교수에게 지도를 받으려고 케임브리지 대학원을 택했는데, 대학원 동기에게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그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다”고 했다. 오차드 교수와 성관계를 맺어온 동기가 본인이 관계를 먼저 끝낸다면 어떻게 될지를 무척이나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카비르 교수는 “지도교수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퍼질 수 있을지를 모르니 원초적인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며 “교수와 대학원생은 완전히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 놓여 있다. 대학원생에게는 박사학위가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원을 다녔던 캐서린 카코브 리즈 대학 교수는 오차드 교수가 알코올에 의존하는 등 교수로서 부적절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오차드 교수는 교수실이 아니라 술집에서 면담을 하곤 했다. 면담할 때 자주 취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카비르 교수와 카코브 교수 둘 다 대학에 문제 제기를 했지만, 대학 측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옥스퍼드대에서 미국 역사를 가르치는 피터 톰슨 교수 역시 비슷한 이유로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역사 박사학위 과정을 밟았던 미아 리야나지는 톰슨 교수도 오차드 교수처럼 여학생들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하고, 학생들을 술집에서 만나는 등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리야나지는 역사학부 교직원들이 톰슨이 교수로서 자질이 없다고 문제를 이미 2년 전에 제기했다는 것을 2019년에 알고서 충격을 받았다. 그 다음해에 리야나지는 다른 학생들과 교직원들과 함께 직접 문제제기에 나섰다. 이번에 옥스퍼드대는 문제제기를 접수했지만 톰슨 교수의 기밀 유지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를 밝히길 거부했다.

옥스퍼드대에선 교수, 학생 간 관계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성폭력 고발에 대한 대응체계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옥스퍼드대 발리올 칼리지에 다니던 해리엇 레스터는 본인 기숙사 방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다른 대학원생이었다. 경찰을 찾고 싶지 않았던 레스터는 대학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발리올 칼리지는 “경찰에 사건을 접수하길 거부할 경우, 대학에서 조사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해리엇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은 성폭행 신고를 막고, 깨끗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라 토로했다.

발리올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은 알자지라의 질의에 “개별적인 사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지만, 직원들과 학생들을 위해 모든 성추행 혐의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답을 보내왔다. 한편 톰슨 교수는 답변을 거부했고, 오차드 교수는 알자지라 탐사보도팀의 조사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답변을 기사에 공개하는 것을 반대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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