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사키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30년 만에 세운다

김윤나영 기자 입력 2021. 10. 20. 15:55 수정 2021. 10. 2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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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상도). 후쿠오카총영사관 제공


일본 나가사키에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진다.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단체가 건립을 추진한 지 약 30년 만이다.

후쿠오카 주재 한국총영사관은 20일 나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다음달 6일에 위령비 제막식이 열린다고 밝혔다. 나가사키시 평화공원에는 1979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이 만든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있지만,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건립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약 7만4000명이 사망했다. 희생자 최대 1만여명이 조선인으로 추정된다. 공업 지역인 나가사키에 일제의 강제 노역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등이 원폭에 희생된 것이다.

히로시마시에는 1970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평화기념공원에 세워졌다. 매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전날인 8월5일 평화공원에서 위령제가 열렸지만, 나가사키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없었다.

원폭 희생자들은 1990년대부터 나가사키 위령비 건립을 추진했고, 2013년에는 재일본대한민국단 나가사키본부와 후쿠오카총영사관, 한국후쿠오카청년회의소 등이 건립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나가사키시는 강제 징용 관련 비문 내용과 위령비 디자인을 문제 삼아 건립 허가를 거부해왔다.

위령비 건립위원회는 시 당국을 설득한 끝에 지난 3월 부지 제공을 승인받고 올해 여름 건립 허가도 받았다.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비문에 시 당국이 반대한 “강제징용”이라는 표현 대신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을 넣기로 하면서다.

위령비 안내문에는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노동자, 군인 및 군무원으로 징용, 동원되는 사례가 증가했다. 나가사키시와 주변 지역에 (조선인) 약 3만5000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시 상공에서 폭발한 원자폭탄은 약 7만4000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다. 수천명에서 1만명으로 추정되는 우리 동포도 목숨을 잃었다”고 적기로 했다. 대신 영문 위령비 안내문에는 ‘강제로 노역했다’(forced to work)는 표현을 넣었다.

후쿠오카총영사관 측은 “재일동포와 한국 정부의 오랜 염원이었던 이번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건립을 통해 태평양전쟁 당시 원폭 투하로 희생된 한국인 영령을 자유롭게 추도할 수 있게 됐다”며 “전쟁과 피폭의 역사를 후세에 전달할 수 있는 소중한 징표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건립위는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 이희섭 후쿠오카총영사와 함께 나카무라 호도 나가사키현 지사, 다우에 도미히사 나가사키 시장도 위령비 제막식에 초대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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