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부조리와 역설의 바다 위 뗏목 같은 우리의 삶"..사노맹 출신 작가 남진현 개인전

김종목 기자 2021. 10. 2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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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왜 나는 8년간의 옥살이를 해야 했을까요? 나는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도, 남의 재물을 빼앗지도 않았습니다. 그릇된 세상을 그르다 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꿨던 것뿐입니다.”

남진현이 세번째 개인전에 내놓은 작품 ‘Paradox: Stranger than paradise’ 옆에 붙인 작가 노트다. 영어(囹圄)의 고통과 회한을 추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중앙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1990~98년 8년 동안 투옥됐다. 그는 이어 “내 청춘의 3천 날을 한 평 독방에 갇혀 있어야 했던 타당한 이유를 누가 설명해줄 수 있으신가요? 부조리합니다”라고 썼다.

남진현,‘Paradox: Stranger than paradise’. 작가 제공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제3관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제목은 ‘패러독스’다.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가 행해지며, 진리의 깃발 아래 거짓이 은폐된다. 자유를 빙자하여 핍박을 정당화한다. 정의도 진리도 자유도 저 멀리 있고, 언제나 가까이 있는 것은 패러독스”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의 삶은 “거대한 부조리와 역설의 바다 위에 떠서 흔들리는 뗏목”과 같다.

작가는 그 자체로서 부조리하고 역설적인 개인의 삶, 물신적 욕망을 좇기에 바쁜 일상, 짐승과 신 사이 인간 존재의 양면성 같은 걸 모순의 근원이라고 본다. 작가는 “인간은 거대한 패러독스의 사회를 구성하고 추동하며 실현하는 저마다의 작은 패러독스들이다. 나는 이러한 관점을 ‘패러독스 현실주의’라 명명해본다. 이것이 내 그림의 유일한 주제”라고 했다.

남진현 ‘Paradox: 현실적인 것은 비이성적이다’. 작가 제공

남진현은 각각의 작품에 이런 메모를 적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생명에 대해, 빈부격차에 대해, 지구환경에 대해 얼마나 어이없는 짓을 하고 있는지 직시한다면 우리는 세계를 용서할 수 없을 겁니다”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신적 위상을 꿈꾸지만 결코 짐승의 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남진현 ‘짐승과 신 사이에서’. 작가 제공

남진현은 25년 전 청주교도소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봤다. 그는 철학 영화로 받아들인다. “세상은, 잘 계획되고 준비되어 깔끔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그런 곳이 결코 아닙니다. 어긋나고 비틀리는 부조리의 무대, 그것이 우리들 인간사회의 본질”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패러독스 속의 존재라 하더라도 인간의 운명은 스스로의 선택과 결단에 의해 달라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는 낙관의 전망도 작품에 담았다.

남진현 ‘Paradox: Zorva the Greek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작가 제공

사람 형상을 해체·재조합한 뒤 ‘터키 블루’의 기조에서 색을 대비하며 구현한 작품 12점을 선보였다.

남진현은 생계 문제 때문에 전업 작가로 일하진 못한다고 했다. 그는 “사회 변혁에 대한 에너지를 오래 안에 품어왔다. 이런 에너지와 열정,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뇌를 예술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25일까지.

남진현 작가는 세번째 개인전 ‘패러독스’를 서울 인사 마루센터에서 25일까지 개최한다. 작가 제공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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