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건, 세 개의 진실 '라스트 듀얼'
[경향신문]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은 다수 증인이 하나의 사건을 각기 다르게 증언하는 구성을 취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금씩 바뀌는 진술은 관객을 혼란에 빠트렸고, ‘진실의 상대성’을 이야기하는 구로사와의 전략은 후대 영화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0일 개봉한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감독 리들리 스콧) 역시 70여년 전 영화인 <라쇼몽>의 자장 아래 있다. 14세기 프랑스, 용맹한 기사 장(맷 데이먼)은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아내 마르그리트(조디 코머)가 한때 친구였던 라이벌 자크(애덤 드라이버)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마르그리트는 용기를 내 자크의 범행을 알리지만, 자크는 끝까지 죄를 부인한다. 명백한 증거가 없자 왕은 신의 가호로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승소하는 ‘결투 재판’을 허락한다. 결투에서 지면 목숨을 잃을 뿐 아니라 성폭행 혹은 무고의 오명까지 뒤집어써야 한다. 장과 자크는 최후의 결투를 준비한다.


영화는 크게 3개의 챕터로 나뉜다. 장이 말하는 진실, 자크가 말하는 진실,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진실의 순서다. 상황이나 대사는 비슷하지만 배우들의 연기 톤이나 뉘앙스가 조금씩 다르다. 물론 각자 자신이 돋보이고 유리한 입장에서 ‘진실’을 말한다. 특히 성폭행 상황에 대한 기억은 크게 다르다. 장이 집을 비운 사이 자크가 계획적으로 마르그리트를 찾아간 사실은 공통적이지만, 자크는 마르그리트가 ‘의례적인 반항’을 했다고 본다. 전형적인 가해자의 입장이다. 반면 마르그리트는 성폭행 상황을 끔찍하게 돌아본다. 고통과 비참함이 뒤섞인 비명은 자크의 기억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하다.
장은 스스로 충직하고 용맹한 군인이라고 생각한다. 전장에서 동료가 적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놓이자, 명령을 거스른 채 적진으로 뛰어든다. 자크는 이를 무모한 행동으로 여긴다. 마르그리트 입장에서는 장도 그다지 훌륭한 남편은 아니다. 이기적·독선적이며 자신의 알량한 명예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장이 정(正), 자크가 반(反)이라면 마르그리트는 허울뿐인 자존심을 내세우는 두 남자를 모두 비판한다는 점에서 두 주장을 아우르는 합(合)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실화에 바탕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실제 결투 재판은 장과 자크의 결투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오랜 친구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굿 윌 헌팅>(1997) 이후 24년만에 공동 각본을 썼다. 애플렉은 자크 편을 드는 방탕한 영주 역으로 출연한다. 몇 차례의 전투 장면과 장과 자크의 결투 장면에선 <글래디에이터>(2000), <킹덤 오브 헤븐>(2005) 등 사극 액션에 정통한 리들리 스콧의 연출력이 증명된다. 올해 84세인 스콧은 구찌 가문의 실화를 그린 <하우스 오브 구찌> 개봉도 목전에 두는 등 매년 1편꼴로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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