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머뭇' 영·프와 다른 길 걷는 독일 "에너지 정책엔 후진 없다"

김정수 2021. 10. 2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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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원전 소재 주정부·운영업체 "폐쇄계획 불변"
유럽 기후행동네트워크 "근시안적 대책은 안 돼"
독일 바이에른주에 있는 군트레밍겐 원자력발전소. 앞 줄 맨 왼쪽에 있는 돔 형태의 작은 건물이 A호기 원자로, 오른쪽에 있는 낮은 원통형 건물이 왼쪽부터 B와 C호기 원자로다. 뒤에 서 있는 잘록한 형태의 높은 구조물은 냉각탑이다. A호기와 B호기는 이미 폐쇄됐고, C호기는 올해 말 폐쇄될 예정이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최근 발전용 화석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영국·프랑스가 축소하려던 원전 의존도를 다시 높이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정책 당국자는 물론 원전 운영업체까지도 기존의 탈원전 일정을 그대로 고수할 뜻을 밝혀 주목된다.

독일 니더작센주의 슈테판 바일 총리는 지난 17일 독일 유력 일간지 <디 벨트>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기후 중립적이고 안전한 에너지에 의존한다는 올바른 결론을 내렸고, 그 에너지는 재생에너지다. 에너지 정책에서 후진은 필요치 않고 더 빠른 전진이 필요하다”며 탈원전 일정 수정 가능성을 일축했다.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가동 원전 17기 가운데 8기를 즉시 폐쇄하고 나머지는 2022년까지 폐쇄하는 탈원전 일정을 원자력법에 규정해 강력히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내년말까지 문을 닫아야 하는 남은 원전 6개 가운데 2기가 니더작센주에 있다.

독일의 원전 운영업체인 라인베스트팔렌전력(RWE)도 원전 폐쇄 일정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재무책임자인 마이클 뮐러는 최근 독일 경제지인 <뵈르센 자이퉁>과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원전을 계속 운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일부에서 탈원전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 그는 “이 논쟁은 독일에서 끝났다”며 “(원자력 대신)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이 재정적 관점에서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독일의 차기 연방정부를 구성하려는 사회민주당(SPD), 녹색당, 자유민주당(FDP) 중 어느 쪽에서도 내년 말로 예정된 탈원전 완료 일정의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올 연말까지 끝내기로 한 유럽연합의 녹색산업 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 협상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힘겨루기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협상에서 독일을 중심으로 한 탈원전 추진 국가들은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반면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원전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친환경 에너지에 포함시켜 원전에 대한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고 맞서 왔다.

프랑스가 최근 소형모듈원전(SMR) 연구·개발 투자 계획을 밝히고 원전 비중 축소 계획을 재고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기존 입장에서 특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국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영국 정부 전략의 중심에 원전이 놓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중요한 변화가 될 수 있다. 영국은 지난 6월말 확정한 그린 파이낸싱 프레임워크(녹색금융체계)에서 이미 원전을 녹색금융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영국 재무부는 프레임워크에서 “원자력은 태양열 및 풍력 발전, 탄소 포집 및 저장과 함께 영국 저탄소 에너지 믹스의 핵심 부분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서도 원자력 관련 지출에 자금을 지원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영국 정부가 원전을 정부 전략의 중심에 놓는 것이 녹색금융체계의 수정으로 뒷받침될지 주목된다.

에너지 정책 전문가 사이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급감한 화석에너지 수요가 급반등하면서 촉발된 전력 수급 불안을 원전 재도입으로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원전은 부지 선정을 위한 조사, 인근 주민들과의 합의 등 시공에 들어가기 전에 오랜 시간이 걸려 건설 계획부터 가동까지 최소 10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일본 경제산업성은 2030년에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 비용이 역전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에너지 가격 역전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건설에 10년 이상 걸리는 원전을 짓자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소형모듈원전(SMR)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현재와 같은 대형 원전은 재생에너지와 같이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작기 때문에 훨씬 비쌀 수 밖에 없는 에스엠아르를 어디에 건설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유럽의 185개 엔지오(NGO)가 참여한 기후행동네트워크(CAN) 유럽본부는 20일 최근 유럽의 에너지 위기의 원인을 ‘화석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더딘 탓’으로 규정하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더욱 빨리 늘려야한다고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웬델 트리오 기후행동네트워크 유럽본부 책임자는 “에너지 요금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는 현재의 가스 위기는 화석연료로부터 재생에너지로의 완전한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근거”라며 “유럽 지도자들은 근시안적 대책 대신,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면서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 확대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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