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우파' 갖고 또 장난질, 엠넷은 언제 철이 드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엠넷 오디션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올해의 예능이자 올해의 발견이다. 시청률은 높은 편이 아니지만 10월 1주 콘텐츠 영향력 지수 조사에서 종합 부문과 예능 부문 모두 7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인 화제성을 자랑하고 있다. 사전 투표를 위해 공개하는 공식 유튜브 영상의 조회 수는 3억 뷰를 훌쩍 넘었다. 제시와 스우파가 콜라보한 공식 뮤직비디오는 일주일도 안 되어 1000만 뷰를 넘겼다. 여기에 제이블랙 등 유명 스트릿 댄서를 비롯한 댄스, 이슈 유튜버들의 관련 영상까지 더하면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 열혈 팬임을 자처한 장도연의 엠넷 <TMI뉴스>, 김신영의 <정오의 희망곡> 등 방송 활동도 열렬한 환호 속에 본격화하고 있다.
<스우파>는 하나의 드라마다. 대중들이 잘 몰랐지만 이미 존재해온 세계의 다양한 인물들이 함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와 각 캐릭터들이 펼쳐나가는 개별 서사가 있다. 비록 대체로 리더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30여명이 넘는 댄서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런데, 매력적인 인물의 발견, 씬의 산업 자체를 바꾸는 계기라는 측면에서 이미 엄청난 성과를 쌓았음에도 엠넷은 이 놀라운 발견을 온전히 담아내는 그릇을 내놓지 못했다. K-팝의 영광을 이룩한 주체인 댄서들에게도 팬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기획 의도는 무척 좋았고, 멋지게 통했다. 아이돌을 능가하는 팬덤도 구축됐다. 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인기 요인은 엠넷의 설계나 기대와는 다른 방향에서 이뤄졌다.
엠넷은 국내 모든 방송사 중 컷엔 페이스트 '복붙'에 가장 능하다. 이건 KBS도 상대가 안 된다. <스트릿 걸스 파이터>의 전개 방식도 '복붙'의 연속이다. 이들은 갈등과 기싸움, 반목으로 긴장감을 주조하는 스토리를 만들고, 무대의 퍼포먼스로 해소하는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란 공식을 그대로 적용한다. 이해가 안 되는 대결 방식이라든가 (이를 테면 미션을 잘 수행한 사람들도 약자지목 배틀에 다시 나오는), 기세고 텃세 있는 '여성' 댄서들에게 약자로 찍혀 고생 고생하는 아이돌 채연이나 미모로 주목받은 노제의 오뚝이 서사, 몇몇 댄서의 발언이나 리액션을 부정적 역할의 감초로 활용하고 다른 장면과 맥락의 리액션을 이어 붙여 갈등 혹은 감정을 부추기는 전통적인 악마의 편집이 여전히 난무한다.
메가 크루 미션에서 리더 허니제이와 홀리뱅 크루원들이 갈등을 빚는 듯 그리고, 원트의 엠마 등이 리더 효진초이를 속 썩이게 만들었다는 에피소드 또한 이후 출연자들이 라이브 방송을 통해 방송에서 보여준 것과 사실이 다르다고 해명한 악마의 편집사례 중 하나다. 물론, 그럼에도 <쇼미더머니>가 힙합씬의 역사를 바꾼 것처럼 씬 자체에 큰 도움이 되고, 몸값의 자릿수가 달라졌으니 축제 분위기가 식은 것은 아니지만 흥행하기 위해 더한다는 노이즈가 먹히지도, 도움이 되지도 않고 있으니 사법 판결까지 받은 사고방식과 악마의 편집이란 정체성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이런 덧붙인 사족들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면 했지 인기요인에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스우파>가 앞선 댄스 예능 <댄싱나인>이나 <힛더스테이지>와 다른 폭발력과 대중성을 보이는 것은 춤 자체에 관심이 늘어서라기보다 자기중심을 잡고 애정을 갖고 나가는 능력 있는 멋진 여성들이 존재하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짜고 있는 스토리라인 밖에서, 그렇게 살아오고 쌓아왔기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춤에 대한 열정, 수준 높은 퍼포먼스, 팀 스프릿 등이 춤이라는 직관적 예술로 승화되면서 대중과 댄서들의 만남은 시작됐다.
자기 콘텐츠가 탄탄한 인물들이 동시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2015년 스타셰프 침공의 재림이기도 하다.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 쌓아온 커리어, 높은 자신감과 열정 등 직업에 대한 프로의식은 인간적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토대이자 그들이 '멋진 언니'인 이유다. 간절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승부욕과 매순간 최선을 다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 붓는 열정, 그 결과와 상대를 존중하는 성숙함, 팀을 이끄는 여러 유형의 리더십까지 동기부여의 효능감과 효용성 측면에서 웬만한 자기계발서보다 훌륭하다. 즉, 단순히 춤, 스트릿 문화만으로 <스우파>가 폭발력과 파급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란 뜻이다.
이 시점에서 엠넷은 '복붙'을 한 번 더 한다. <쇼미더머니>이후 <고등래퍼>를 런칭했 듯 <스우파> 인기 댄서들을 멘토로 삼고 고교생 댄서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트리트 걸스 파이터>를 서둘러 준비했다. 스타성 있는 친구들을 선점하고 <스우파>의 여운과 팬덤을 이어가기 좋은 영리한 스핀오프 전략이다. 하지만 <스우파>의 인기는 춤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는 점에서 염려가 앞선다. <스우파>의 인기 비결은 한마디로 춤을 넘어선 댄서들의 살아온 이야기와 배어 있는 태도에서 배울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멋지고 성숙한 언니들이 만든 축제가 끝날 때까지 엠넷도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 부디 모처럼 시작된 축제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길을 찾길 바래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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