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상상력과 유희..19세기 조선에 '톨킨' 같은 작가 있었다"

오남석 기자 2021. 10. 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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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영 연세대 교수가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홍길주의 ‘숙수념’을 번역해 펴낸 ‘누가 이 생각을 이루어 주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책 표지에 가상공간 숙수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김선규 기자

■ 홍길주의 ‘숙수념’ 완역해 ‘누가 이 생각을…’ 펴낸 박무영 교수

책꽂이 사이 틈으로 들어가니

판타지 세계가 나온다는 내용

게임 매뉴얼·기하학까지 담겨

홍길동의 율도국은 이상국가

숙수념은 개인적인 문화공간

“홍길주의 ‘숙수념(孰遂念)’을 처음 접했을 때 번듯한 집안의 사대부가 어떻게 ‘나니아 연대기’ 같은 책을 썼을까 생각했어요. J R R 톨킨 같은 작가가 우리한테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19세기 조선의 ‘힙한 전업작가’로 당대에 “1000년 뒤의 장자(莊子)요 사마천(司馬遷)”으로 평가받은 홍길주(1786∼1841). 그의 대표작 ‘숙수념’을 완역해 ‘누가 이 생각을 이루어 주랴’(태학사)로 펴낸 박무영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난 12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누가 이 생각을 이루어 주랴’라는 뜻의 ‘숙수념’은 책 이름이기도 하지만 홍길주가 책 속에 설계한 공간의 이름이기도 하다. 일종의 메타버스(확장가상공간)를 연상하게 하는 이 공간은 책꽂이 사이 빈틈으로 손가락을 들이밀면 몸 전체가 빨려 들어가면서 펼쳐진다. 북산(北山)·남강(南江)·동천(東川)·서호(西湖)로 둘러싸인 별세계로, 홍길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예 공동체가 존재한다.

―15년 넘게 작품을 번역했는데.

“나는 정약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론 주로 젠더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심각하고 진지한 주제를 주로 다룬 셈인데, 홍길주와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유희 정신으로 충만한 문학을 했다. 정약용은 논리를 따라가면 되지만, 홍길주는 언어를 가지고 장난을 한다. ‘숙수념’만 해도 그 안에 게임 매뉴얼, 수수께끼, 심지어 기하학까지 담겼다. 홍길주의 문학세계는 그의 선배들, 정약용이나 박지원과는 다른 19세기 모습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됐다.”

―정약용, 박지원 등과 달리 홍길주는 21세기 와서야 조명받았다.

“정약용, 박지원은 일제강점기에 조선학 운동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관심 대상이 됐다. 이후 이들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기본적으로 근대 담론과 연결돼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말부터는 이런 거대담론을 중심에 둔 연구 편향이 깨지기 시작한다. 이념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 문학에서 심각한 주제의식 외에도 자유로운 유희 정신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홍길주도 지식인으로서 세상을 근심했고, 혁신적인 사회개혁 구상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작가’였고, 아주 자유로운 상상과 유희 정신으로 충만해 누구보다 참신한 글을 썼다.”

―홍길주의 저작에서 ‘숙수념’의 위치는.

“‘숙수념’은 홍길주가 마흔 살 무렵 지은 작품이다. 홍길주는 ‘진짜 문인’이다. 그는 글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으로도 이야기한다. 책꽂이의 작은 틈 사이로 들어가면 펼쳐지는 제2의 세계를 만들고, 거기에 온갖 종류의 글을 배치해 놓은 ‘숙수념’은 그의 이런 형식 실험의 정점에 있다. 이는 당대에도 ‘기발한 발상’으로 주목받아, 이미 단독 작품으로 돌아다녔다. 주제적 측면에서도 주목받았다. 훗날 개화파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 박규수가 불우한 지식인의 삶을 슬퍼하는 ‘백설세모행(白雪歲暮行)’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숙수념’을 읽고는 ‘숙수념행(孰遂念行)’으로 바꿨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허생전’이나 ‘홍길동전’의 이상향과 숙수념은 어떻게 다른가.

“공간 배치가 다르다. (‘홍길동전’의) 율도국은 배를 타고 가는, 현실과 연장 선상에 있는 장소다. 그런데 숙수념은 책꽂이 틈으로 들어가는, 현실과 겹쳐진 공간이다. 또 율도국이 정치적 이상국가인 것과 달리 숙수념은 홍길주의 문화적 꿈을 펼치는 아주 개인적인 공간이다.”

―‘숙수념’에 대해 ‘슬프다’고 평가했는데.

“홍길주의 형(홍석주)은 좌의정에 올랐고, 동생(홍현주)은 정조의 부마다. 모든 걸 다 가진 집안이다. 내가 슬프다고 한 이유는 홍길주가 세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도 그걸 다 접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왕실의 인척이고 너무 대단한 집안이다 보니 조심스러웠던 게 아닌가 추측된다. 대신 그는 문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숙수념’에 대해선 ‘세상에서 실현의 기회를 얻지 못했기에 그저 글로만 지은 세계’라고 말한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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