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치고 농사 지으며 글 배우는..'쿨'한 산골할머니의 일상

안진용 기자 2021. 10. 2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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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삼척의 산골에 살고 있는 68세 임선녀 할머니.

원 감독은 지난 18일 문화일보와 나눈 인터뷰에서 "'임선녀'라는 할머니의 성함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과거에는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글을 못 배우기도 했는데 선녀님은 '글을 배우라'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공부를 시작했다"며 "그런데 배움으로 인한 즐거움이 크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낮에는 내내 농사일과 소를 치다가 저녁이 되면 매번 2만6000원씩 택시비를 들여 학교에 가고, 밤늦게까지 숙제를 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 에너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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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톡 -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

10여년 다큐 외길 원호연감독

“물어물어 찾은 만학도 할머니

열공하는 에너지 전하고 싶어”

강원 삼척의 산골에 살고 있는 68세 임선녀 할머니.(선녀님) 18세에 시집 와 평생을 이곳에서 산 할머니의 삶은 어떨까? 반복되는 일상 속에 도시로 나간 자녀들 걱정과 그들의 연락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선녀님은 소 치고, 농사짓는 일상 외에도 글을 배우고, 집을 짓느라 바쁘다. 누구보다 에너지 넘치고 즐거움이 가득한 그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에 ‘한창나이 선녀님’(감독 원호연·사진)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다.

선녀님은 요즘 말로 ‘쿨’하다. 오랜 기간 키운 소를 내다 팔고, 3년 전 암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사연은 앞서 개봉됐던 영화 ‘워낭소리’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소를 트럭에 실으면서도 “나는 안 운다”며 ‘워낭소리’와 차별화를 두고, 남편과 사별 뒤 홀로서기를 위해 씩씩하게 글을 깨치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도 거리를 둔다. 오히려 “시골 할머니는 왜 항상 짠해야 하나?”라고 되묻는 듯하다. 원호연 감독이 선녀님을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택한 근간이다.

KBS ‘인간극장’과 영화 ‘강선장’·‘선두’ 등을 선보이며 10년 넘게 다큐멘터리 외길을 걸어온 원 감독은 “강원도에서 뒤늦게 글 배우는 만학도 할머니를 만나보자”는 막연한 결심 하나를 갖고 적절한 인물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1년 6개월간 물어물어 선녀님을 만나게 됐고, 또 1년 6개월의 촬영 기간, 후반 작업 1년을 거쳐 이 영화를 완성했다.

원 감독은 지난 18일 문화일보와 나눈 인터뷰에서 “‘임선녀’라는 할머니의 성함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과거에는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글을 못 배우기도 했는데 선녀님은 ‘글을 배우라’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공부를 시작했다”며 “그런데 배움으로 인한 즐거움이 크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낮에는 내내 농사일과 소를 치다가 저녁이 되면 매번 2만6000원씩 택시비를 들여 학교에 가고, 밤늦게까지 숙제를 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 에너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선녀님은 시골 노인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탈피한다. 그는 오래 산 집을 뒤로하고, 좋은 터에 새집을 짓기 시작했다. 공사장에서 인부들과 어울리며 소일거리도 찾고, 직접 커피 물도 끓인다. 왜 고생을 사서 하냐며 “우리 집으로 오시라”는 자녀들의 우려는 “혼자라도 좋은 집 지어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며 제쳐버린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는 선녀님은 그야말로 한창나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깊은 속내가 있다.

원 감독은 “다 자녀들을 위한 거다. 명절 때 자녀들이 먼 길을 오는 것 자체가 미안해서, 깨끗하고 좋은 집에서 하루라도 편하게 묵었다 가라는 의미”라면서 “이 영화는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의 꿈에 관한 영화다. 그의 이름처럼 선녀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실제 삶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원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해 ‘시간을 응축하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이 영화는 400시간 촬영해 80분의 결과물을 냈다. ‘잘 버리는 것’이 중요했다. 영화에 내레이션 한 줄 넣지 않는 것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컷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원 감독은 “선녀님의 일상은 반복되지만, 반복 속에서도 모든 의미를 응축하는 영상이 담길 때가 있다”면서 “그게 영화로 만나는 다큐멘터리의 묘미인 것 같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오랜 기간 기다리며 표현하고자 하는 정확한 장면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내레이션이 없어도 되고, TV 다큐멘터리와는 차별화된다”고 덧붙였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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