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제일 진취적인 여성 '한창나이 선녀님'
아이즈 ize 최재욱 기자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기다. 코로나19 시국 장기화로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어 입에서는 한숨이 저절로 나오고 눈에서 생기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마음속에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인류는 슬픔 속에서 희망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얻으며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슬픔이란 감정에만 함몰돼 있기에는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가고 인생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20일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감독 원호연, 제작 큰물고기미디어)은 쌀쌀해지는 날씨에 어깨가 움츠러들 관객들 가슴에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을 난로 같은 영화. 남편을 3년 전에 잃고 강원도 산골에서 혼자 사는 임선녀 할머니의 아주 평범한 일상을 통해 우리 모두가 내일을 살아갈 이유를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보슬보슬 내리는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러닝타임 내내 일분일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임선녀 할머니의 바쁜 일상이 색다른 감정들을 경험하게 만든다.
예순 여덟이란 나이. 모두가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로 생각하지만 임선녀 할머니에게는 새로 시작하기에 아주 딱 좋은 최적의 나이다. 한글을 배우기 위해 매번 2만6000원의 거금을 들여 택시를 타고 시내 한글학교에 가고 50년 가까이 남편과 살아온 집을 정리하고 직접 망치질을 하며 새집을 직접 짓기 시작한다. 어떻게 그 산골서 혼자 사느냐며 많은 사람들이 시내에 내려와 살라고 권유하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새집을 지을 희망에 부풀어 있다.
우리 모두가 안다. 인간이 신에게 부여받은 삶은 유한하기에 만남이 있으면 이별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초연한 척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다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다. 시간에 의탁해 슬픔이 희석돼가기를 기다려 보지만 가슴속에 남은 아린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임선녀 할머니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 추억 속에 갇혀 있을 생각이 전혀 없다. 아직 인생을 정리하기에는 이른 '한창나이'이기 때문. 암 판정을 받고 할머니를 혼자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에 며칠을 울었다던 할아버지의 지고지순한 사랑, 50년 동안 4남매를 번듯하게 키워낸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삶의 역사를 발판삼아 새로운 희망을 꿈꾸기 시작한다.
세상을 떠나기 전 한글을 배우라 권유했던 남편의 유언에 따라 시작된 만학도의 길. 할머니에게 지나온 날들만 복기하며 살기에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느끼고 싶은 것도 많다. 아직 젊은 나이에도 인생을 다 산 것처럼 자조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반성하게 할 만큼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취적인 여성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할머니' '엄마'란 프레임에 가둘 수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임선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원호연 감독은 아름다운 강원도 풍경을 배경으로 임선녀 할머니의 홀로서기 과정을 애정과 존경이 담긴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낸다. 특별한 장치나 기법 없이 우직한 정공법으로 임선녀 할머니의 일상을 담백하게 담으면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가족처럼 아끼던 소들을 떠나보내고 시집 올 때 입고 온 저고리 같은 추억이 가득 담긴 물건들을 과감하게 불태워 버리는 할머니의 쿨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면서 비워야 새로 채울 수 있고 어제를 보내야 지금 바로 오늘을 즐기고 힘찬 내일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인생의 연륜이 드러나는 할머니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 아찔한 카타르시스와 깊은 울림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한창나이 선녀님'은 러닝타임이 83분. 아주 작고 소소한 영화다. 그러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할 만큼 대중성도 분명히 있다. 온가족이 러닝타임 내내 미소 지으며 위로와 힐링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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