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출신 류지원 "후두암 앓던 父, 안전부에 잡혀간 나 살리기 위해 재산 다 날려"(아침)

박정민 2021. 10. 2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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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출신 무명가수 류지원 씨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무명가수 류지원은 "아버지 끼를 물려받아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코디언 가수로 활동했다. 보위부에서 교환수로 일하면 시집을 잘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고의 직장이다. 그런데 교환수로 될 때 신분 조사를 한다. 결국 좋은 집안을 가진 자식들이 교환수가 된다. 저희 집은 그냥 노동자 집안이었다. 그래서 선전대를 그만뒀다. 실의에 빠져서 방황했고 소위 문제아들과 다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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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박정민 기자]

북한 출신 무명가수 류지원 씨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10월 20일 방송된 KBS 2TV '아침마당'에서는 도전 꿈의 무대가 펼쳐졌다.

이서율은 "저는 영업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영업사원이 될 수 있었던 건 트로트 덕분이다. 처음 취직할 때 면접에서 장단점을 말해보라고 하더라. 긴장해서 장점만 말했다. 그래서 임원분이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라고 생각해도 되겠냐며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을 지었다. 직감적으로 떨어졌구나 했다. 손을 번쩍 들고 노래를 불러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합격했다"고 전했다.

이어 "열심히 노래 연습을 했고 모창 프로그램에서 3라운드까지 올라가는 쾌거를 이루었다. 작지만 지역 축제에서 노래를 부르는 행복한 세일즈맨이 됐다"며 "영업은 정말 힘들다. 신규 영업을 가면 말도 못 하게 하고 매몰차게 대한다. 무엇보다 연말이 되면 매출을 달성해야 해서 잠을 못잔다"며 오늘은 자신의 노래를 영업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무명가수 류지원은 "아버지 끼를 물려받아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코디언 가수로 활동했다. 보위부에서 교환수로 일하면 시집을 잘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고의 직장이다. 그런데 교환수로 될 때 신분 조사를 한다. 결국 좋은 집안을 가진 자식들이 교환수가 된다. 저희 집은 그냥 노동자 집안이었다. 그래서 선전대를 그만뒀다. 실의에 빠져서 방황했고 소위 문제아들과 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남한의 음악을 보고 들으며 푹 빠졌다. 북한에서 들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노래는 마음을 편하게 했다. 너무 좋았다. 그로 인해 안전부에 잡혀갔다. 사건이 커져서 정치적인 사상범이 됐다. 온갖 폭행과 멸시를 당했다. 더 큰 문제는 제가 잡혀간 사이 아버지가 후두암이라는 병에 걸렸다. 수갑을 찬 채라도 좋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저의 부탁은 철저히 묵살당했다"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저를 살리겠다고 집안 재산을 다 날렸다. 수술하면 3년은 더 살 수 있는 목숨을 수술을 못 받고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덕분에 가석방으로 나왔는데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아버지는 죽음으로 저를 구하셨다. 가슴이 미어진다"며 "계속되는 감시를 받았고 저 때문에 가족들이 많이 힘들게 살았다. 그래서 중국으로 도망갔고 마침내 대한민국으로 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KBS 2TV '아침마당' 캡처)

뉴스엔 박정민 od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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