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의 정치가 남긴 것 [오늘을 생각한다]

입력 2021. 10. 2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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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이재명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 최장수 총리로서 한때 대세를 형성했던 이낙연 후보는 어쩌다 패배했을까. 당혹스러웠던 박근혜 사면을 고집했던 장면이나 우습기 짝이 없던 ‘적통론’을 제기했던 장면 등이 떠오른다. 그보다는 이낙연의 굵고 짧았던 호시절이 민주당과 우리 정치에 남긴 것들을 살펴보는 편이 유익할 것 같다.

경선 패배가 확정된 날, 이낙연 후보 측에서는 이의를 제기했다. 중도 사퇴한 후보들의 표를 무효표 처리한 것이 당규를 위반했다는 이른바 ‘무효표 사사오입’ 주장이다. 이 후보 측 주장에도 일말의 타당함은 있었으나, 본선을 앞두고 경선 결과에 불복하는 모습은 볼썽사나웠다. 사실 여기까지 왔으면 후보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모양이 빠지더라도 비벼볼 구석이 있으면 일단 비벼야 하는 게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의 신세다. 그와 별개로, 이낙연이라는 정치인이 당대표-대선후보를 거치며 민주당에 확립한 기풍이 있다. 이제 저 당은 당헌당규가 어떠한가를 따지는 정당이 아니라 내가 그 당헌당규를 지킬 필요가 있느냐를 따져야 하는 정당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이낙연 캠프에서 불복 의사를 밝히자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즉각 “경선은 당헌당규에 따라 진행됐다”며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송 대표가 저 말을 했을 때 민주당 지지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코웃음 쳤다. 이제 저 당의 당헌당규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이런 근본 없는 정당으로 전락한 데에는 누구보다 이낙연의 기여가 크다.

총선을 앞두고 위성정당 창당 논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이낙연은 당선대위원장을 수락한 뒤 “비난은 잠시 책임은 4년”이라는 어록을 남기며 위성정당 창당의 길을 연다. 상대 당에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던 바로 그 일을 똑같이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년 뒤 치러진 박원순과 오거돈의 후임자를 뽑는 재보궐선거, 이낙연의 ‘엄중한’ 잣대는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른다. 이낙연 지도부는 재보선 귀책사유가 자당에 있을 경우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변경하면서까지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냈다. 이낙연은 당의 미래와 승리 확률까지 고려했을 때 그 선거에서 가장 좋은 기회-후보를 내지 않을 기회를 그렇게 날린다. 선거 참패와 추락한 지지율, 경선 패배와 불복사태. 민주당이 원칙없는 ‘내로남불 정당’으로 각인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그가 이제 와서 당헌당규의 훼손을 규탄했다.

짧았던 ‘이낙연의 민주당’ 시절은 어떻게 기록돼야 할까. 위성정당 창당-재보궐 공천-경선 불복으로 이어진 일련의 결정은 공당으로서 민주당의 신뢰도를 실추시켰다. 집권당의 모럴해저드를 방조·강화해 정치의 도덕 하한선을 낮추고 유권자 정치환멸을 유발했다는 점에서, 나는 그가 우리 정치의 질적 수준을 한단계 떨어뜨린 장본인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엄중하게 지켜본다는 ‘엄중 선생’이 실제로는 가장 경박스러운 기풍을 심어놓았다.

정주식 직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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