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등에 맞서 해양주권 확보" vs "北 위협 대비 역량강화 더 시급" [세상을 보는 창]

박병진 2021. 10. 2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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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경항모 사업 논란
김영삼정부 때 소형 항모 도입 첫 계획
최근 국감서 사업 타당성 논란 재점화
해군 "어떤 어려움 있어도 정상 추진"
적 위협권 밖서 함재기 운영 등 장점
작전 결정 전략적 패러다임 바뀌어
방위산업 등 경제 파급 효과도 막대
호위전단 확보 등 막대한 비용 걸림돌
잠수함·초계기 확충이 더 시급 주장
실익은 없고 덩치만 큰 공룡 평가도
해군 경항공모함 전단 개념도. 해군 제공
2030년대 초반 배치를 목표로 한 해군의 경항모(경항공모함) 사업이 진통을 겪고 있다. 경항모를 통해 중국과 일본의 해양 확장을 견제하고, 북한의 미사일과 잠수함 위협에 대한 방어력을 높이는 동시에 한반도 주변 및 남중국해 등에서 국제안보협력을 강화하겠다는 해군의 청사진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당면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 등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없지 않다. 함재기인 F-35B 수직이착륙기 도입까지 무려 7조∼8조원에 이르는 예산 소요도 부담이다. 군전력 증강사업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구축함과 호위함, 잠수함, 정찰자산 등 항모 호위전단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적 대함미사일이나 어뢰, 지상 초음속미사일 등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업타당성 검증 등 절차를 생략하고 정부가 무리하게 사업추진계획을 발표하는 바람에 논란이 가열된 측면 역시 부정적 여론을 키웠다. 이러다보니 대통령 공약사업이지만 지난해 예산 101억원을 연구개발 비용으로 요청했다가 국회에서 1억원만 남긴 채 100억원이 삭감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런 와중에 최근 국회에서 경항모 사업이 해군 과대망상 환자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논란이 재점화한 것이다. 국회 논란을 계기로 경항모 사업의 타당성과 효용성을 짚어 봤다.

◆국회에서 불붙은 경항모 도입 논쟁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이 지난 12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방위사업청 국감에서 “해군 극소수 과대망상증 환자들이 경항모를 추진 중이다. 정상적인 해군은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발언했다. 그는 “200조원이 들어도 북한 위협에 대응하고 장차 주변국 외침에서 억제능력을 갖는다면 해야 하지만 이 전력(경항모)은 쓸모가 거의 없다. 경항모를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 외에 실익은 없다”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러고는 “해군과 조선업체 불법 네트워킹이 걸려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국회 국방위에서 특정 전력증강사업을 두고 이런 날선 비판이 제기되는 건 드문 경우다. 더구나 신 의원은 육군 중장 출신이지만 육해공 합동작전을 다루는 합동참모본부에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작전통’이다. 신 의원 발언이 알려진 뒤 해군 예비역 단체들은 “신 의원은 미래의 거북선이 될 경항모의 설계도를 불태우려고 한다”며 “그 설계도를 그린 사람들을 ‘과대망상증에 걸린 환자’라고 치부하고 비리 집단인 양 매도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신 의원은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신중치 못한 발언으로 마음이 상하셨을 해군 현역과 예비역 전우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틀 뒤인 14일 국감에서도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데 공식 사과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러면서도 끝내 경항모 도입 반대 입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해군이 내년부터 본격 추진하는 경항모 건조사업 관련 내용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홍보하기 시작했다. 해군은 이를 통해 반대 목소리를 듣고 국민들의 궁금증과 불안을 해소하는 데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해군 제공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이날 오후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해군본부 국정감사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경항모 사업이 정상 추진될 수 있도록 해군 전 장병이 똘똘 뭉쳐서 해나가겠다”고 강행 의지를 천명했다. 현재 군당국은 내년도 국방예산안에 사업 착수 예산으로 72억원을 책정한 상태다. 여러 논란에도 사업을 밀어붙일 태세다.
경항모 사업 반대 논리는 이렇게 요약된다. “북한의 핵미사일이나 잠수함 전력을 상시 탐지하고, 유사시 타격할 수 있는 역량 강화가 시급한데 오히려 불요불급한 경항모 사업에 수조원의 국방예산을 낭비하게 생겼다”거나 “경항모보다는 잠수함과 초계기를 확충하고, 지상과 해상 방공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공중, 지상, 해상의 탐지자산들이 합동으로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탐지 요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문 등이다.
◆경항모 건조 시기상조인가

사실 항모의 전략적 함의는 복잡하다. 전략자산은 분명하지만 압도적 억지력을 제공하는 ‘원샷원킬’의 무기체계가 아니다. 무인 전투시대에 맞지 않는 덩치 큰 공룡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렇다고 항모를 과소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흔히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리는 항모는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 플랫폼을 갖춘 데다 동시에 공격과 방어가 가능한 수상·수중 전투단과 함께 움직이다보니 막강한 합동전력으로 평가받는다.

작금의 한반도 주변 안보지형은 북한의 위협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해양력 강화와 전략적 비대칭성의 확장 등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이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중국은 랴오닝함 등 2척의 항모를 보유하고 있다. 더구나 중국은 2030년까지 항모 6척을 보유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잖아도 한반도 서남해역은 중국의 앞마당이 된 지 오래다. 중국어선들의 서해 싹쓸이 조업, 항공모함 등 함대를 이용한 무력시위, 고정부표 설치를 통한 해양 영토 확장 등은 중국의 서남해역 장악 시도의 단면이다. 사드 문제로 한·중관계가 악화됐던 2016년 9월에는 서해에서 3개 함대를 동원한 대규모 실탄 훈련까지 했다. 북한을 상대하기도 벅찬 상태에서 대응에 나설 전력 확보가 절실하다는 게 해군 논리다.

일본 방위성도 지난 5일 구축함 ‘이즈모’가 미 해병대에서 운용하는 F-35B 전투기 이착륙 임무를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이즈모함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헬기 탑재형 호위함이지만 경항모와 다름없다. 한국 해군의 경항모 도입을 시기상조라며 나무랄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경항모 사업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천문학적인 비용이다. 통상 항모 1척을 전력화하려면 구축함 및 순양함 2∼3척, 잠수함, 보급함, 조기경보통제기 등 호위전단이 필수다. 전문가들은 해군이 경항모 운영 시 순수 함정 설계와 건조에만 2조원 이상, 수직이착륙기(F-35B 기준) 20대 도입에 6조원가량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운영비(연간 500억원 추정)는 별개다. 해군은 “항모전단 구성 전력 예산은 이미 반영돼 있는 상태로 경항모 건조에 따른 추가 소요 예산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비용 증가 부분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경항모의 효용 가치는

군사적 측면에서 경항모는 적의 위협 사정권 밖에서 함재기를 운영한다. 기동이 자유스러운 만큼 적에게는 예측불허의 존재다. 적의 전략적 선택에 심대한 영향을 줄 것임에는 분명하다. 인도주의적 지원과 재난구호 작전에도 투입될 수 있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꼽을 수 있다. 복합 무기체계인 경항모는 기본적으로 수상함 플랫폼에 활주로와 격납고, 정비시설 등 일정 규모의 항공전투단 운영 기반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기능을 적절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설계에서부터 건조에 이르기까지 전투체계와 탐지체계, 탑재무장 등이 완벽하게 구비돼야 한다. 이 과정에 수많은 기업의 참여가 예상된다. 또 대부분 국내기술로 제작된다는 점에서 10여년 동안 국내 방위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클 것으로 추정된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경항모 건조에 국내 방산업체의 역량이 결집되면서 기술력은 한 단계 성장하고, 투입되는 2조여원의 건조비는 국내 방산업체에 재투자되는 선순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다는 점도 주목할 수 있다. 유사시 항모의 작전 결정권이 한반도 운명을 가를 수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 해양주권은 힘의 논리에서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다. 한·중·일 3국은 모두 해양관할권이 중첩돼 있다. 경항모는 해양관할권뿐 아니라 방공식별구역까지도 적극적인 방어권을 행사할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 군의 최초 항모 도입의 역사는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군력 개선계획’에 ‘수직이착륙기 탑재 가능한 소형 항공모함 확보’ 방안이 포함된 뒤 25년이 흘렀다. 무엇보다 육군 등 군 내부 반발이 컸던 탓이다.

한 예비역 해군 관계자는 “이지스구축함을 도입할 때도, 잠수함을 들여올 때도 반대가 극심했다. 혜안을 가진 리더들이 밀어붙여 오늘에 이르렀다”면서 “이지스구축함과 잠수함이 없었다면 북한의 위협에 제대로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나. 경항모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이제는 군복 색깔을 떠나 안보를 바라볼 때”라고 말했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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