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부는 가을 공모주 시장.. 공모가 줄줄이 '기대 이하'

노자운 기자 2021. 10.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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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월 수요예측 17개사 중 6개 공모가, 밴드 밑돌아
기관·개인 경쟁률 낮아져.. 상반기와 달라
"증시 변동성 크지만 차라리 올해 상장 강행"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연일 호황이던 기업공개(IPO) 시장에 때 이른 한파가 닥쳤다. 증시에 야심 차게 출사표를 던진 기업들이 잇달아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요 예측에서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하며 외면받고 있다.

공모주의 저조한 인기는 최근 주식시장의 높은 변동성과 관련 있다. 증시가 부진하며 앞서 상장한 종목들이 공모가보다도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사례가 늘자, IPO를 앞둔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도 덩달아 위축됐다.

일러스트=손민균

19일 한국거래소와 38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9월부터 기관 수요예측을 실시한 17개 회사 중 6개사의 공모가가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 하단 이하로 결정됐다.

프롭테크(부동산과 기술의 합성어) 업체 리파인은 지난 14~15일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실시하고 공모가를 2만1000원으로 결정했다. 밴드는 2만1000~2만4000원이었다.

회사 측은 “최근 투자 심리가 약해진 주식시장 분위기를 고려해 시장 친화적으로 공모가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낮은 경쟁률 때문에 불가피하게 공모가를 밴드 하단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수요예측 경쟁률은 64.2대1에 그쳤으며, 기관이 신청한 물량 중 60%가 밴드 하단 이하에 몰렸다.

지난 12~13일 수요예측을 실시한 아이패밀리에스씨는 밴드(3만9000~4만8000원) 하단보다 낮은 2만5000원으로 공모가를 확정했다. 이 회사는 웨딩 플래너 업체 아이웨딩과 화장품 브랜드 롬앤을 운영하고 있으며, 배우 채시라의 남편이자 가수 출신인 김태욱 대표이사 덕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아이패밀리에스씨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 매물 중 79%가 밴드 하단(3만9000원) 미만에 몰렸다. 기관 투자자들의 경쟁률은 63.1대1에 그쳤으며, 의무 보유 확약 물량은 없었다. 기관 투자자 사이의 경쟁이 치열할 때는 1주라도 더 받기 위해 15일~6개월의 의무 보유 확약을 거는 것이 통상적이다.

9~10월 기관 수요예측을 실시한 업체들의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 확정 공모가. /자료=한국거래소, 38커뮤니케이션

차바이오텍 자회사인 차백신연구소는 지난 5일 공모가를 밴드(1만1000~1만5000원) 하단인 1만1000원으로 확정했다. 기관 경쟁률은 206대1이었으며, 의무 보유 확약 물량은 전체의 2%에도 못 미쳤다.

앞서 지난달 기관 수요예측을 한 국내 1위 중고차 업체 케이카는 밴드(3만4300~4만4300원) 하단을 밑도는 2만5000원으로 공모가를 정했다. 건강 기능 식품을 만드는 프롬바이오, 조미료와 건강 기능 식품 재료 등을 제조하는 에스앤디도 밴드 하단에 못 미치는 가격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기관 투자자들의 공모주 외면은 최근 들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올해 1~8월 수요예측을 실시한 회사 78개 중 공모가를 밴드 하단 이하로 결정한 곳은 단 2개사(아모센스, 에이치피오)에 불과했다. 반대로 공모가가 밴드 상단보다 높은 가격으로 결정된 회사는 27개로, 전체의 35%를 차지했다.

기관뿐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주 청약 역시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9~10월 공모주 청약을 받은 17개사 중 10개사의 경쟁률이 1000대1에 못 미쳤으며, 그 중 5개사는 경쟁률이 두자릿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수천 대 1의 경쟁률이 속출했던 상반기 공모 청약 시장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최근 6개월 간 코스피지수의 변동 추이. /자료=한국거래소

이처럼 가을 IPO 시장에 찬바람이 부는 것은 증시 변동성 확대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코스피지수는 최근 석 달 동안 6.6% 하락했으며, 코스닥지수는 4.3% 내렸다. 특히 코스닥지수는 하루 만에 2% 넘게 오르내리는 일도 종종 발생할 정도로 등락 폭이 커, 향후 인플레이션과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및 기준금리 인상 등 대외 변수에 따라 어떻게 움직일지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규 상장사들의 주가 흐름도 부진하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공모주 불패’라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졌을 정도로 공모주의 투자 수익률이 높았으나, 증시 변동성이 커지며 새내기주의 성적표도 암울한 상황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상장한 회사 91개 중 23개사의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특히 마스크 제조 업체 씨앤투스성진(352700)과 한컴라이프케어, 분자 진단 기업 진시스템(363250)은 공모가보다 40% 이상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주가지수 흐름이 부진하면 상장을 앞둔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상장을 준비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동종 업계 회사들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자사에 적용해 적정 시가총액을 산정하고 이를 토대로 밴드를 제시한다.

최근 6개월 간 코스닥지수의 변동 추이. /자료=한국거래소

따라서 이미 상장한 회사들의 주가 수준이 떨어지면 신규 상장사들의 시가총액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밴드를 확정하고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경우라면, 기관 입장에서는 현 시장 상황과 비교해 해당 밴드가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해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기업 입장에서는 IPO 일정을 섣불리 미루기 쉽지 않다는 것이 증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현재 주식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내년보다는 올해가 차라리 낫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며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상장을 추진 중인 회사 중) 가급적이면 올해 안에 상장 작업을 마무리 지으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도 “내년에 상장해 더 높은 몸값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면 모를까 증시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며 “상장을 해서 엑시트(투자금 회수)할 수 있을 때 빨리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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