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백인 탈피' 서구 뉴스룸, 한국언론 다양성을 묻다

김영희 입력 2021. 10. 20. 05:06 수정 2021. 10. 20. 09: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NYT, 다양·포용성 보고서 내고
2030·여성·유색인종 직원 늘려
BBC선 콘텐츠 성비 50:50 프로젝트도
국내도 여성간부 비율 높아지고
젠더데스크 등 콘텐츠 다양화 노력
"양적 변화 넘어 질적 수준 높여야"
미국 뉴욕 맨하튼 중심부에 있는 뉴욕타임스 본사 건물.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지난해 6월 <뉴욕타임스>는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일부 폭력시위에 군 투입을 주장하는 톰 코튼 연방상원의원의 기고를 누리집에 실었다가, 바로 다음날 트위터로 의견을 공유한 직원 800여명의 집단 항의서명 사태를 맞았다. 온라인으로 소집된 타운홀 미팅 뒤 논설실장은 사표를 냈다.

당시 배경 중 하나로 몇년 새 달라진 인적 구성이 꼽혔다. 이 회사 내 22~37살 밀레니얼 세대는 2012년 20%에서 2019년 49%로 늘었다. 여성 비율은 2018년부터 남성을 앞섰고, 흑인 등 유색인종은 2015년 27%에서 지난해 33%로 늘었다. 같은 시기 백인은 73%에서 63%로 줄었다. 이념적으로 윗세대보다 더 급진적인 성향에 인종·소수자 문제에 훨씬 예민한 감성을 지닌 구성원들의 증가는 오피니언을 담당하는 논설실과 편집국이 철저히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오랜 전통을 깨버린 것이다. 올 2월엔 과거 인종주의적 발언이 알려진 40여년 경력의 베테랑 과학 기자에 대한 회사 조처가 미온적이라며 150명 넘는 직원들이 집단 편지를 보냈고, 결국 그는 퇴사했다.

<뉴욕타임스>의 인적 구성(단위: %). 자료: NYT 누리집

뉴욕타임스 “2025년 고위급 절반 흑인·라틴계로”

이를 두고 ‘세대갈등’ ‘문화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런 뉴스룸의 인적 구성 변화는 뉴욕타임스가 선택한 ‘의식적 노력’의 결과다. 이 매체는 2017년 펴낸 ‘2020 보고서’에서 정확한 보도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보도를 위해 뉴스룸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필수적이라고 선언하고 매해 관련 보고서를 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전통 언론매체를 넘어 ‘디지털 구독 기업’을 지향하는 뉴욕타임스의 이익과도 맞물린다고 보고 있다. 2년 전 세계신문협회 행사에서 마크 톰슨 당시 시이오(CEO)는 “우리의 가장 큰 위험은 플랫폼의 문제가 아니라 더 젊은 세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인구적 문제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미디어 정책 리포트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DEI): 사회적 갈등 완화를 위한 저널리즘 노력’은 “2017년 미투운동과 2020년 흑인 생명보호운동을 계기로 미국과 영국 언론사들에서 디이아이(DEI) 가치 실현에 적극 나서는 게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뉴욕타임스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올해 ‘행동개시: 우리 모두를 위한 문화 건설’이라는 사내 문서에서 △디이아이를 추구해야 할 가치로 명시화 △디이아이 리더십을 위한 자문단 구성 △직원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 등을 못박았다. 특히 2022년부터 경영부서에 디이아이 책임자를 배치하고 고위급 직원 평가와 보수에 디이아이를 반영하는 한편, 2025년 말까지 고위급 직원의 50%를 흑인과 라틴계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A.G. 설즈버거 발행인 등은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는 불편해할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일터를 만들어줄 뿐 아니라 우리의 저널리즘과 비즈니스와 회사를 더욱 강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비비시 50:50 프로젝트 이후 시청자 반응

남성·백인·엘리트 중심의 뉴스룸은 “사회에서 주변화될 사람을 과소표현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오랜 시간 받아왔다. 하지만 이를 탈피하는 것이 콘텐츠 변화로 직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뉴스룸 구성만큼이나 “콘텐츠 단계에서의 디이아이, (포털로 콘텐츠를 보는 비중이 압도적인 환경을 고려해) 노출 단계에서의 디이아이 또한 중요하다”고 정책 리포트는 지적한다. 기사의 ‘정파적 소비’로 이용자들의 편견과 선입견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디이아이 가치 추구는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비비시 누리집

2017년 시작된 영국 <비비시>(BBC)의 ‘50:50 프로젝트’가 대표적 노력 사례다. 총리나 장관처럼 방송사가 선정할 수 없는 인물은 제외하고, 방송사가 제어할 수 있는 기자·논평가·전문가 등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들의 성별 비율을 동등한 수준으로 맞추자는 것이다. 이용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올해 비비시의 온라인 이용자 조사에서 응답자 62%가 “여성 등장 증가를 인지했다”고 답했고, 16~34살 여성 응답자 58%가 “더 자주 사이트를 방문하게 됐다”고 답했다. 현재 유럽 및 오스트레일리아 등 26개국 100여개 방송사로 확대된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 성별을 넘어 인종, 장애인으로 넓힐 계획이다. 다만 다양성 외 공정성, 포용성을 콘텐츠에 어떤 기준으로 구현할지는 과제다.

여성 편집국장·젠더데스크...국내 변화 안착하려면

국내 언론계에 변변한 디이아이 조사는 없지만, 뉴스룸 성별구성과 관련해선 한국여기자협회가 정기적으로 회원사의 여성 기자 보직 비율을 공개하는 것이 비교적 정확한 수치로 참고할 만하다. 2년 전 협회는 <서울신문>과 <동아일보>를 상대적으로 보직별 여성 비율이 골고루 높은 곳으로 꼽았는데, 조만간 공개할 이번 조사 결과에선 <한겨레>와 <한국일보>가 에디터·부장의 여성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구조적 변화를 단언하긴 이르지만, 최근 <연합뉴스>의 첫 여성 편집국장, <서울신문>의 첫 여성 편집인 등장에서 보듯 뉴스룸 고위층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주목할 흐름이다.

조직 내부 소통과 함께 콘텐츠 다양성을 위한 노력으론 각사의 젠더데스크 설치가 꼽힌다. <한겨레>의 젠더데스크와 젠더팀, <한국방송>(KBS) 성평등센터, <서울신문> 젠더 연구소, <한국일보> 젠더 뉴스레터, <경향신문> 젠더데스크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주 언론인권센터는 조주빈 판결에 대해 몇몇 언론들이 여전히 ‘괴롭힘’ ‘악마의 범죄’ 같은 표현을 쓰며 “디지털 성착취라는 본질을 외면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장은교 <경향신문> 젠더데스크는 “양적으로 젠더 관련 보도가 몇년 새 늘었는데 이제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하는 단계”라며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함께 고민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별 외 다양성 확대 또한 한국 언론의 과제다.

정책 리포트를 작성한 김선호 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국내에서도 시작된 관련 노력이 안착되기 위해선 일차적으로 뉴스룸이나 콘텐츠 다양성 구현의 정도에 대한 체계적 조사가 필요하다”며 “언론사가 ‘다양성 보고서’를 공개하고 이 보고서 제작에 공적 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영희 선임기자 dora@hani.co.kr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