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공병원 차지한 코로나, 밀려난 취약계층

서혜미 2021. 10. 2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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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 의료 버팀목 공공병원
55곳 중 52곳이 '감염병 전담'
외래환자 최대 84% 줄어든 곳도
"비용 늘어 병원가는 횟수 줄여"
2021년 9월2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코로나19 음압격리병동에서 간호사들이 코로나19에 걸린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정부 의료비 지원 대상자(의료급여 수급자)인 장아무개(77)씨는 당뇨와 경도치매, 무릎 관절염 등 복합적인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그는 의료취약계층에게 우선적으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는 공공병원인 인천의료원을 수십년간 이용해왔다. 장씨는 지난해 2월 초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고 콩팥 기능이 저하됐다. 평소처럼 인천의료원을 찾았지만 “코로나19 환자 치료 때문에 입원이 안 된다고 했다”며 비싼 민간병원으로 발길을 돌릴 때의 막막했던 심정을 털어놨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지역의 공공의료기관들이 코로나19 거점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의료취약계층이 공공의료의 안전망 밖으로 밀려난 사실이 수치로도 확인됐다. <한겨레>가 19일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연구소 데이터센터와 함께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전국 55개 공공병원 가운데 13곳(23.6%)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과 비교했을 때 올해 상반기(1~6월) 월평균 외래환자 수가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병원 외래진료 환자 수가 줄어든 것은 55개 공공병원 중 52곳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그만큼 코로나19 환자가 아닌 일반 환자를 입원시키거나 진료할 여력이 줄어든 것이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 환자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수도권 공공병원 일반 환자 수가 대폭 줄었다. 상반기 월평균 외래환자 수가 2019년에 견줘 50% 이상 감소한 병원 8곳은 경기도의료원 소속 5개 병원, 서울시 북부·동부·서남병원 3곳이다. 서울시 북부병원은 2019년 월평균 외래진료 환자 수가 3383명이었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월평균 534.8명으로 무려 84.2%가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의료서비스 이용 감소를 고려하더라도, 공공병원이라는 특수성을 참작할 때 저소득층, 쪽방촌 거주자 등 취약·빈곤층 상당수가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췌장암 기저질환자 안아무개(58)씨도 그런 경우다. 안씨는 코로나19 이후부터 오랫동안 진료받아온 서울의 공공병원을 다니지 못하고 있다. 급한 대로 민간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지만 병원비가 공공병원보다 두배 가까이 늘었다. 그는 “늘어난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빚까지 졌다”며 “병원 가는 횟수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씨 같은 사례는 일부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인천의료원을 이용하는 저소득·고령·만성질환자의 의료서비스 이용이 코로나19 이후 절반 이상 줄었다. 코로나19 유행 전후 1년6개월간 건보공단 자료를 비교한 결과, 50대 이상 기저질환이 있는 의료급여 수급환자의 진료비 총액이 59억300만원에서 18억1천만원으로 69.33% 급감했다. 같은 기간 인천의료원의 진료비 총액이 295억2400만원에서 236억5천만원으로 19.9% 줄어든 데 비하면 감소폭이 세배 이상 많다.

다른 지역 병원도 사정은 비슷했다. 같은 기간 대구의료원은 의료취약계층의 진료비 총액이 54.77%(72억1300만원→32억6200만원) 줄었고, 부산의료원은 52.71%(105억700만원→49억6800만원) 감소했다. 코로나19 발생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던 강원도 영월의료원도 36.89%(5억5100만원→3억4700만원)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 의원은 “의료취약계층의 의료서비스 소외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취약계층 의료공백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의원은 “감염병이 확산할 때 공공의료기관의 역할과 기능이 약해지지 않도록 정부가 재정지원을 포함한 정책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들만 치료하다 보니 장기적으로 의료 역량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라는 특정 질환만 2년째 보면서, 내원 환자가 급감하고 의료진이 떠나는 구조적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 단체들은 해결책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의료공백 조사, 공공병원 및 의료인력 확충, 감염병 위기 상황 시 민간병원 역할·의무 법제화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번 분석은 경찰대병원 등 특수목적 공공병원, 산재병원 등을 제외한 공공병원 58개 가운데 지난해 문을 열었거나 자료를 미제출한 병원 3곳을 제외한 55곳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서혜미 이재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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