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이상하고 아름다운 드니 빌뇌브의 SF 세계 [N리뷰]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모래 언덕을 뜻하는 '듄'(Dune)이라는 제목을 갖게 된 이유는 사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듄'에서 모래와 바위로만 이뤄진 행성 아라키스는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이자 신성한 환각제인 스파이스를 수확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주인공 폴(티모시 샬라메 분)의 각성을 돕는 운명의 공간이다.
20일 개봉하는 '듄'은 웅장하고 신비로운 미장센으로 20세기 최고의 SF 소설 걸작이라 불리는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을 근사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1965년 프랭크 허버트가 쓴 동명 원작은 SF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휴고상 최우수 장편상을 받았으며, 1966년 제정된 네뷸러 문학상의 첫 수상작이다. 또한 휴고상과 네뷸러 문학상을 동시에 받은 첫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두툼한 여섯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원작을 영화화 하는 프로젝트를 드니 빌뇌브 감독의 손에 쥐어준 워너브러더스의 선택은 적절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블레이드 러너 2049' '컨택트' 등의 영화를 통해서 독특한 미장센,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준 바 있다. 특히 '컨택트'에서 그는 SF 장르 안에서 심오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유려하게 풀어내는 자신만의 특장점을 드러냈다. '듄'은 이러한 드니 빌뇌브 감독 개성의 정점이 담긴 작품이다.
1만191년, 미래 인류는 봉건주의로 돌아가 황제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귀족 가문들이 여러 행성을 나누어 다스리고 있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수장인 레토 아트레이데스 공작(오스카 아이삭 분)은 황제의 전령으로부터 그간 하코넨 가문이 지배해왔던 아라키스를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고 가족 및 가신들과 함께 그곳으로 향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아트레이데스 공작의 아들 폴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는 인물. 그는 위대한 지도자인 아버지와 신비로운 여성 집단인 베네 게세리트의 일원인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 분)의 능력을 고루 물려받았다.
폴은 아버지를 이어 가문을 잇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갖고 있다. 아버지 레토 공작은 "위대한 자는 지도자가 되려 하지 않고 부름에 응답한다"(A great man doesn't seek to lead, answer the calling)며 그런 아들을 격려한다. 레이디 제시카는 아들에게 '보이스'라고 불리는, 타인의 의지를 조종하는 베네 게세리트의 능력을 가르친다. 베네 게세리트들은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90년간 시공을 초월한 완전체 여성인 '퀴사츠 해더락'의 탄생을 계획했다. 하지만 레이디 제시카는 베네 게세리트들의 뜻을 외면한 채 자신의 아이를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나게 했다. 남자인 폴은 어머니를 통해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베네 게세리트의 정신적인 능력들을 훈련받는다.
폴은 매일 꿈에서 아라키스 행성에 있는 여인(젠데이아 분)을 보게 된다. 그의 꿈은 사실 꿈이 아닌 예언이자 계시다. 폴이 봤던 여인은 아라키스의 원주민인 프레멘 부족의 전사 챠니다. 스파이스 중독으로 눈이 파란 프레멘들은 하코넨들의 핍박 아래 2등 국민으로 전락해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들을 구원할 예언 속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가족과 함께 아라키스레 도착한 폴은 자신이 아라키스, 프레멘 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느낌을 받는다.
원작의 내용을 비교적 충실히 따랐다는 '듄'은 철학적이면서도 종교적이고 상징적이다. 주인공 폴과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의 관계는 성경 속 예수와 마리아의 관계를 연상케 하며, 사막의 스파이스를 두고 대립하는 제국과 프레멘들의 모습은 석유를 둘러싸고 대립한 서구 열강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관계를 재현한 듯하다. 많은 상징들이 있으나 결국 이 영화는 내면의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자신의 '부름'에 응답하는 한 젊은이의 내적인 성장을 따라간다. 중심에 선 티모시 샬라메는 깊은 눈빛으로 초반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레베카 퍼거슨, 오스카 아이삭, 제이슨 모모아, 스텔란 스카스가드, 조슈 브롤린, 하비에르 바르뎀, 샤론 던컨-브루스터, 장첸, 데이브 바티스타, 데이빗 다스트말치안, 젠데이아 등 베테랑부터 '대세 배우'까지 화려한 배우진은 믿음직스러운 활약을 보여준다.
황량한 사막 행성의 아름다움은 아이맥스 스크린을 통해 더욱 크게 실감할 수 있다. 비가 많이 오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모행성 칼라단과 붉은 색 스파이스가 빛나는 사막 행성 아라키스의 대조가 눈길을 끈다. 중세와 미래를 뒤섞은 듯한 세트 디자인부터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세련된 의상까지, 영화의 톤앤매너는 기괴하면서도 아름답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최대한 사실적인 시각효과를 만들기 위해 CG보다는 세트 촬영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으며 요르단과 아부다비, 노르웨이 등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백미는 명장 한스 짐머의 음악이다. 한스 짐머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른 행성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수개월간 영화에 들어갈 새로운 악기 개발에 힘을 썼다고 알려졌다. 새로운 악기와 인간의 목소리 만으로 창조한 여러가지 음악들은 기묘한 분위기로 SF 영화인 '듄'의 수준을 한층 높여줬다. 러닝타임 155분.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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