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그림보다 떡고물' 미술 시장

정상혁 기자 입력 2021. 10. 20.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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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KIAF' 전시장 풍경. 달아오른 미술 시장 분위기를 증명하듯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다. /한국화랑협회

화가 이우환의 그림 ‘동풍’이 31억원에 팔린 게 지난 8월이다. 한국 생존 작가 낙찰 최고가 신기록이었다. 이 그림이 두 달 만에 매물로 나왔다. 의아해하는 시선이 많았다. 어렵사리 구한 그림을 벌써 팔겠다고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에 출품된 이 그림은 여러 매스컴을 타며 오른 인지도 덕에 일찌감치 팔렸다. 화랑 측은 거래가를 밝히지 않았지만 더 낮은 값일 리 만무하다. 지난 8월 경매 낙찰자가 바로 이 화랑 주인이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계가 때아닌 과열 논란을 낳고 있다. 올해 KIAF는 그 뚜렷한 증거였다. 먼저 찜해둔 그림이 품절됐다고 분통을 터뜨리거나, 그림을 벽에 걸기도 전에 거래가 이뤄지는 등의 진풍경이 목격됐다. 행사 첫날 소수 관람을 위해 VVIP 입장권을 만들어 30만원에 팔았음에도 5000여 명이 붐비는 혼잡도 연출됐다. “도떼기시장 같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한국화랑협회는 “첫날만 350억원, 총매출 650억원을 올렸다”고 했다. 20년 역사상 최대치다.

화랑 주인들이 먼저 우려를 표했다. “장사가 잘돼 기분은 좋지만 투자식으로만 접근하는 양상이 위험해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이 같은 성향이 뚜렷하다. 부동산이나 가상 화폐처럼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로 일단 덮어놓고 사두는 것이다. “금세 경매에 내놓을 낌새가 보이면 팔지 않았다”는 화랑이 있을 정도였다. 작품성보다 화제성이 값을 좌우하다 보니 눈은 이름값에 몰리고, 비전공 연예인도 쉽게 시장에 진출하고, 소속사는 “얼마에 팔렸다”는 보도 자료를 뿌려 화제를 양산한다. 사람들이 눈 대신 ‘귀’로 사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미술은 소문을 먹고 자란다. 며칠 전 뱅크시의 그림이 영국 경매에서 약 300억원에 팔렸다. 2년 전 경매에서 낙찰과 동시에 절반이 세절(細切)돼 경악을 몰고 온 뒤, 그림값이 20배 가까이 폭등한 것이다. 미술계의 요상한 시장 논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해외 시장의 압도적 규모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세계 미술 시장이 지난 10년간 63% 성장한 반면 국내 시장은 1.6%에 그쳐 정체 상태”라는 내용의 분석 자료를 냈다. 미국 시장 규모만 해도 우리의 84배다. 한국 작가의 시장가(價) 역시 위상이 현저히 떨어진다. 더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향유(享有)가 배제된 활황이 지속 가능할 리 없다. 시장 크기만큼 안목과 담론의 수준도 높아져야 하는 것이다. 홍콩이 잇단 악재로 비실대면서 서울이 아시아 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가치’를 증명할 때다. 그림 팔아 떡고물 얻는 게 화상(畫商)의 전부는 아니다. 미적 자산으로서의 근거를 다각적으로 제시해 미술 확산을 유도해야 한다. “사두면 비싸진다”는 논리 일변도라면, 아무리 고상해 보여도 그곳은 도떼기시장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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