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벌가 며느리 등 30여명, 취미·친구관계까지 털렸다

강우량 기자 2021. 10. 20. 03: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건 블랙박스] 백화점 명품관 VIP 정보 유출 사건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백화점 명품 보석 매장에 경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수사관들은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며 매장 CC(폐쇄회로)TV와 컴퓨터를 확인하고, 한 직원의 스마트폰을 압수했다. 경찰은 14일에도 재차 압수수색을 이어갔다.

강남 유명 백화점에 경찰이 출동한 것은, 이 매장에서 VIP 고객들의 사생활 정보가 유출됐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상자는 총 30여 명으로 소위 재벌가(家)와 중견기업 오너 등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자료에는 해당 인물의 연락처와 주소, 생일뿐만 아니라 이들의 취미, 자녀 관계, 단골 식당 등 세세한 정보가 담겼다고 한다.

19일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해당 자료는 경력 15년의 명품 보석 딜러인 30대 여성 A씨의 것이었다. A씨는 여러 명품 브랜드에서 보석 딜러로 일하면서 재벌가 며느리, 홍콩 사업가 아내 등 소위 ‘큰손’을 전담 관리해왔다고 한다. 그의 다이어리에는 주요 고객의 기념일이나 기피하는 색상, 친구 관계 등 10여 년에 걸쳐 수집한 영업 기밀이 담겼다.

A씨는 지난 7월 한 명품 보석 브랜드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지난달 1일 해당 브랜드가 입점한 강남의 한 백화점에 첫 출근을 했다. 문제는 A씨가 보유한 ‘VIP 리스트’를 놓고 벌어졌다. 매장 점장은 ‘VIP 리스트를 정리해서 넘기라’고 요구했고, A씨는 ‘고객들의 사생활인 만큼 그들의 동의 없이 넘길 수 없다’고 맞섰다. A씨는 “리스트를 넘기지 않자 ‘잘난 척한다’며 점장 주도 아래 직원들의 집요한 괴롭힘이 이어졌다”며 “명함도 받지 못했고 매장 출입을 위한 지문 등록도 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출근 일주일 만인 지난달 8일, A씨가 매장 지시로 출장을 다녀오는 동안 직원들은 A씨의 다이어리를 무단으로 꺼내봤다. 이를 직원들끼리 돌려보고, 사진을 찍어 일부 내용을 백화점 내 다른 매장 직원들이 참여한 단체 대화방에도 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다이어리에는 VIP 고객 정보뿐 아니라 해당 매장에서 일하면서 관찰한 다른 직원들의 개선점, 업무에 대한 인상 등도 담겨 있었다. ‘고객 응대할 때 슬리퍼 착용하지 말 것’ ‘제품 시연 시 장갑을 착용할 것’과 같은 내용이었고, 관련 사진도 찍어둔 상태였다고 A씨는 말했다. 직원들이 이 내용을 보면서 A씨와 갈등은 더 커졌다고 한다. A씨는 다른 직원과 말다툼을 하다가 ‘내가 당신 노트 찍어서 다 공유했다’는 말을 듣고 뒤늦게 유출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A씨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 의사를 밝히자, 점장은 당일 본사에 다녀온 뒤 곧바로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고 내사(內査·입건 전 조사)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 12일 압수수색과 동시에 해당 다이어리를 꺼내 본 직원을 입건했다. 매장 직원들은 처음엔 ‘떨어져 있는 다이어리를 봤을 뿐’이라고 했다가, 압수수색 이후 ‘점장으로부터 다이어리가 있다는 얘길 들었고 같이 보면서 사진을 찍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해당 보석 브랜드사는 19일 본지 통화에서 “수사 중인 사안인 만큼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밝히기 어렵다”며 “직원들은 해당 사진을 모두 삭제했고 고객 개인정보의 유출은 없었다”고 밝혔다. 해당 백화점 측은 “개인정보 유출 의혹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브랜드사로부터 전해들었다”며 “개별 매장의 직원 채용과 관리는 각 브랜드사에서 책임지고 있는데, 이 같은 일이 벌어져 난감하다”고 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압수수색한 물품을 포렌식해 고객 정보 유출이 얼마나 일어났는지 확인하고 있다”며 “이후 매장 직원들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