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미술 거장 부활 위해… 국제시장 상인들은 헌옷 2t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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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옷, 언젠가 사람이 담겨있었다. 체온이 빠져나간 그 육체를 프랑스 설치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44~2021)는 벽에 하나씩 걸었다. 옷 더미가 된 옷가지 수천 벌이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죽음의 상황을 은유한다. 헌 옷 1t으로 과거와 인간의 부재(不在)를 제시하는 대형 설치작 ‘저장소: 카나다’(1988)가 최근 부산시립미술관에 재현됐다. 미술관 측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했다.
이번 전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망자를 기리는 산 자의 역할을 일깨워 준다. 헌 옷도 돈이기에, 공립 미술관의 빠듯한 예산 탓에 작품 재현은 난항이 불가피했다. 이번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회고전을 준비한 양은진 큐레이터는 부산 국제시장 구제 골목을 누비며 헌 옷을 호소해야 했다. “그러다 그곳 상인회장을 만났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인데 그 많은 옷을 구하느냐’고 묻기에 작품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을 본 상인회장이 말했다. “이거 죽음에 관한 거네예.” 그 자리에서 의류 협찬이 성사됐고, 폐막 후 반납을 전제로 전시장에 내년 3월까지 머물 수 있게 됐다.
검은색 옷가지 1t을 무덤 형태로 쌓아놓은 또 다른 대형 설치작 ‘탄광’(2015) 역시 상인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완성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상태 좋은 검은 옷을 모으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전시는 해야 할 것 아니냐”며 오히려 상인들이 미술관을 독려했다고 한다. 1988년부터 이 시리즈를 시작한 볼탕스키에게 옷은 “추억의 유품 또는 기억”이었다. 그것은 또한 온기다. 탄화된 검은 육신 위로, 익명의 사람들이 보내는 즐거운 한때가 사진으로 담긴 ‘인간’ 연작 90여 점이 깃발처럼 걸려있다.
초기부터 최신작까지 총 43점의 일관된 주제가 죽음을 향한다. 호텔에서 사용한 침대 시트를 눈 더미처럼 쌓아놓은 ‘설국’(2021)이나, 바다에서 구출된 난민들을 위한 금빛 응급 담요를 파도처럼 펼쳐둔 ‘황금바다’(2017)처럼 인간 없는 인간의 흔적을 통해 생사를 거론한다. 전시 기간인 165일을 상징하는 전구 165개를 바닥에 늘어놓고 매일 하나씩 꺼지게 설정한 ‘황혼’(2015)은 시간과 존재의 명멸을 보여준다. 첫 한글 작품도 내놨다. 알전구를 한글 ‘출발’ ‘도착’ 모양으로 벽면에 배치해 이정표 역할을 맡긴 것이다. 작가에게 죽음은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것”이었다. 전시장 한 편에 녹음된 작가의 심장 소리(‘심장’·2005)가 울려 퍼지고 있다.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 3층과 별관 ‘이우환 공간’에서 열리는데, 지난 5월 화가 이우환은 볼탕스키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 “현대미술계에서 작가님처럼 진지하게 죽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아티스트는 없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에서 풍부한 리얼리티가 느껴지는 것은 강한 육체성과 함께 여지없이 물신성(物神性)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진지하게 스스로와 세상을 바라볼 것입니다.”
볼탕스키는 7월 14일 별세했다. 의도찮게 이번 부산 전시는 작가가 세상을 뜬 뒤 열리는 전 세계 첫 회고전이 됐다. 전시 준비 도중 닥친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에서 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딘가에서 전시를 준비하다 죽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주 먼 나라에 있을 것 같군요.” 생전의 예언이 현실이 된 셈이다. 한국에 자신의 영혼을 남겨둔 이방인을 위해 부산 범어사(梵魚寺)에서 19일까지 7일기도가 열렸다. 양 큐레이터는 “작가가 바다보다 산을 좋아했다는 얘기를 듣고 범어사를 택해 기와불사하고 염불도 외며 극락왕생을 기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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