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1700년전 스타의 조건

이영숙·동양고전학자·'사랑에 밑줄 친 한국사’ 저자 입력 2021. 10. 2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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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스타를 원한다. 스타가 뿜어내는 신비로움, 이상, 설렘은 일상의 팍팍함과 삶의 고단함을 상쇄시켜주는 심리 진정 효과를 제공한다. 대중은 호기심과 찬사 속에 자신의 흥과 끼를 발산하는 대리만족을 누리곤 한다. 거기에 시련을 거쳐 빛나는 별이 되는 사연으로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될 때, 팬이 되고 열광한다. 개성 넘치는 일곱 소년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다. 임영웅이 뜨고 송가인이 사랑받는 핵심이다. 하여 이들이 있는 곳엔 팬들의 환호, 선물, 플래카드가 넘치고 넘친다.

스타를 향한 이런 뜨거운 관심은 1700여 년 전 중국에서도 지금 못지않았다. 뛰어난 문장력, 고매한 인품, 출중한 용모의 위개(衛玠·286~312)는 위진남북조 시대 서진(西晉)의 스타 학자였다. 위개가 떴다 하면 순식간에 구름같이 인파가 모일 정도로 요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 열화와 같은 인기가 그에게는 버거웠던 모양이다. 호리호리한 몸매와 창백한 피부가 트레이드마크였던 옥인(玉人) 위개는 건업(建業)을 방문했을 당시 몰려든 관중에 놀라 혼절했고, 얼마 후 죽고 말았다. 이 사건은 지나친 사랑은 독이 된다는 ‘구경독(毒)’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보는 것(간·看)만으로도 위개를 죽였다(살·殺)라는 ‘간살위개(看殺衛玠)’란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

서진의 또 한 명의 유명한 미남자 반악(潘岳·247~300) 역시 수려한 외모, 빼어난 문장 실력으로 따르는 추종자가 많았다. 반악은 특히 희고 투명한 피부와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비단처럼 곱고 깨끗한 문장을 선보이는 깊은 눈매의 반악에게 여인들은 열광했다. 아내가 죽었을 때 애도하며 쓴 ‘도망시(悼亡詩)’는 반악의 인기에 애수를 더했다. 활을 옆구리에 끼고 낙양 거리를 나서면, 여인들이 그를 에워싸고는 과일과 꽃을 던지곤 했다. 이로부터 과일을 던져(척과·擲果) 수레에 가득 찬다(영거·盈車)는 ‘척과영거(擲果盈車)’라는 성어는 ‘여자가 준수한 남자를 흠모함’을 비유하게 되었다.

행사장이나 밴에서 나오는 스타를 향해 선물과 플래카드를 흔들며 달려오는 요즘 팬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꿈과 이상을 주는 스타들, 대중도 그들에게 주고 싶다. 우리는 스타가 필요하다. 스타도 대중이 절실하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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