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33]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국민들

“모두가 이긴 거야. 모두가 상을 받아야 해.” 도도새가 말했다. “그러면 누가 상을 줘?” 동물들이 물었다. “그건 물론 저 애지.” 도도새가 앨리스를 가리켰다. 그러자 동물들이 앨리스를 둘러싸고 왁자지껄 외쳤다. “상을 줘. 상을 줘!” 앨리스는 당황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마침 호두 사탕 한 봉지가 있어서 모두에게 상으로 나눠 주었다.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앨리스는 정원에 나타난 토끼를 쫓다가 이상한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앨리스는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고양이, “너는 누구냐?”고 자꾸 묻는 쐐기벌레, 교훈만 늘어놓는 귀부인과 화가 날 때마다 “저 놈의 목을 베라”고 명령하는 여왕을 만난다. 차를 한 잔도 마시지 못하는 티파티에도 참석하고 재판정에서 입바른 말을 하다가 사형선고를 받기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동화로 알려져 있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상을, 특히 노닥거리거나 졸거나 거들먹거릴 줄만 아는 당시 지배 계층의 모순을 풍자했다. 이런 비판은 과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출발점도 다르고 결승선도 없고 언제 끝나는지도 알 수 없는, 그러나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달리기 경주는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롭다면서도 지배 권력층의 이익만을 챙겨온 현 정부의 모토를 떠올리게 한다.
이상한 나라의 동물들은 땀 흘리며 힘들게 경기하고도 승패를 가리지 않는다. 모두가 이겼다면서 경주에 함께 참가한 앨리스에게 상품을 내놓으라고 한다. 다 같은 우승자라면서도 앨리스의 사탕을 자기들끼리만 나눠 먹고는 그녀의 골무를 빼앗았다가 도로 주면서 앨리스에게 주는 상이라며 환호하고 박수친다. 제대로 하는 일은 없이 국민의 등골을 빼먹는 정치인들의 쓸모없음에 대한 가차 없는 조롱이다.
처형 직전 ‘휴, 꿈이었구나!’ 하고 깨어나는 동화와 달리, 비리는 감춰지고 의혹은 사라지고 죄와 거짓과 위선만이 득세하는 세상은 눈앞의 현실이다. 하루하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으로 산다. 그런 국민이 어디 나 하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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