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조선의 타자, 타자로서의 조선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입력 2021. 10.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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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만약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디까지를 포함하는 범주인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성실한 성리학자라면 “이 세계의 모든 존재”라고 답할 것이다. 성리학에서는 돌멩이 같은 무생물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의 출현을 음양오행의 무작위적 결합의 결과라고 보았다. 성리학자들이 관습적인 위계질서를 부정하거나 현실의 불평등을 모두 비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론적 차원에서 그들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평등하다고 전제하며, 인간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는 우연적 요소라고 설명한다. 북송(北宋)의 학자인 장재(張載)가 “백성은 나의 동포이며 만물은 나와 함께하는 존재”라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당연하지만 실제 조선인들이 이처럼 남과 나, ‘그들’과 ‘우리’를 구별하지 않는 이상적인 삶을 살아간 것은 아니었다. 조선에는 많은 외적·내적 타자들이 존재했고, 그 타자의 존재는 조선의 ‘우리’가 실제로 좁고 때로는 배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조선의 타자일까? 밖으로는 오랑캐로 분류되는 외국인들이 있고 안으로는 여성, 서얼, 노비, 승려, 천민과 함께 과거를 통해 중앙에 진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지방의 양반이 있다. 이들은 분명히 조선이라는 성리학적 공동체의 구성원이었지만 그 정치적 이상이 얼마나 실현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존재들이기도 했다.

물론 조선사람들이 외국인을 무조건 배척한 것은 아니었고, 내적 타자가 모두 불행한 삶을 살았거나 무기력한 존재였던 것도 아니다. 17세기 중국을 통해 들어온 <곤여만국전도>와 같은 세계지도를 보게 된 조선인들은 세계를 유람할 꿈을 꾸거나 외국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도 했다. 조선 후기 몇몇 양반 가문은 딸들에게 교양으로 글을 가르쳤고 어떤 여성들은 자신이 도덕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남성에 못지않다고 생각하였다. 서얼이나 중인은 ‘1등 시민’이 되기 위해 제도를 비판하고 상소를 올려 청원했다. 법과 제도를 영리하게 이용하여 몇 대에 걸쳐 양반신분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 노비도 있다. 지방의 양반들은 중앙의 양반과 달리 국가의 핵심 관료가 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그러나 모든 개별적 노력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는 유교를 권위의식이나 위계질서와 같은 이미지만으로 이해하고는 한다. 그러나 조선을 유교사회라 규정할 때, 이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평등한 존재라는 성리학적 전제가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사실 또한 포함한다. 물론 모든 사회가 그렇듯 이상은 현실에서 잘 구현되지 않으며 사람들은 이상이 실현되지 않는 현실을 ‘억압적’이라고 느낀다.

조선인들은 성리학적 의미에서 “인간은 평등하다”는 이상과 실제로 “인간이 평등하지 않은” 현실 사이에서 ‘억압’에 대해 생각했다. 이와 같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조선인들의 비판을 살펴보는 것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당대인들의 바람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는 출발선이 된다.

이 칼럼에서 앞으로 필자는 조선의 타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타자의 존재는 ‘우리’라는 환상이 감추는 불편함과 폭력을 폭로함으로써 공동체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국민국가나 권력 구조 등 현대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조선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조선을 바라보려는 시도이다. 오늘날과 매우 다른 사회를 살아갔던 여러 화자(話者)들의 이야기 조각들을 맞춰 보노라면, 우리는 좋은 공동체가 무엇인지 단언하기 매우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앞으로 그러한 어려움을 마주하면서 과거의 세계를, 또 우리의 세계를 한층 더 이해하는 여정을 함께하고자 한다.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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