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작품에 다 나온다, 84세 김영옥의 매력

유성운 2021. 10. 2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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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이 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1월 4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아침마당’ 녹화를 마치고 인사하는 모습. [뉴스1]

“두식아, 사람들한테 잘하는 것도 좋지만 너를 위해 살아야 해. 마수운 것도 많이 먹고 행복해야 돼. 그간 동동거리며 사느라고 고생했다. 이제는 다리 쭉 피고 편히 살아라.”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14회)에서 김감리 할머니는 동네 대소사를 챙기고 다니는 ‘홍반장’ 홍두식을 이렇게 위로한다. 청호시 공진동이라는 가상의 어촌을 배경으로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휴먼 스토리를 담은 이 작품은 17일 최종 시청률 12.7%로 마무리했다.

해외 반응도 만만치 않다. ‘갯마을 차차차’는 18일 현재 글로벌 OTT 콘텐트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서 드라마 순위 전체 7위를 차지했다.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타이완, 태국, 베트남 등 8개국에서 1위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기훈의 모친을 연기한 김영옥. [사진 넷플릭스]

‘갯마을 차차차’에서 김감리 할머니 역을 맡은 배우 김영옥의 연기는 단연 돋보였다. 신민아를 제외하고는 소위 A급 스타 배우를 찾기 어려웠던 이 드라마에서 김영옥은 명랑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안기며 작품의 무게추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84세 배우 김영옥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 중이다. 올해 소위 대박 난 드라마에서 김영옥의 얼굴이 빠지지 않았다.

27일째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선 아픈 다리를 끌고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는 기훈의 모친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폐인 같은 삶을 사는 기훈이 목숨을 건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는 동기도 모친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해외에서도 ‘데스 게임’ 장르가 유행이지만 한국 같은 모성애가 반영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신선하게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옥이 진달래 역으로 출연 중인 KBS2 주말연속극 ‘신사와 아가씨’ 도 시청률 29.7%(17일 현재)로 전체 드라마 1위를 순항 중이다. 소속사인 에스피드림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거리에서도 쫓아와 인사하는 팬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영옥은 23일부터 방영되는 tvN 드라마 ‘지리산’에서도 볼 수 있다. ‘지리산’은 산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사고를 파헤치는 미스터리극. 전지현·주지훈이 주연을 맡은 하반기 최대 화제작이다. 김영옥은 전지현의 조모이자 지리산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지리산 터줏대감 이문옥 역을 맡았다. 예의 화통한 목소리와 큰 배포로 마을을 휘어잡는 캐릭터다. 앞서 올해 상반기에는 tvN 월화드라마 ‘마우스’에도 봉이 할머니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소속사 측은 “올해 그간 진행되어왔던 작품들이 한꺼번에 들어가면서 공교롭게 많은 작품을 하게 됐다”며 “건강은 관리를 잘하셔서 문제가 없고, 워낙 암기력이 타고나 대사 외우기도 문제 된 적이 없다”고 했다.

‘갯마을 차차차’에서 김감리 할머니 역으로 인기를 모았다. [사진 에스피드림엔터테인먼트]

이렇게 출연 작품이 줄을 잇는 이유가 뭘까. 하재근 평론가는 “드라마마다 필요한 노인역이 있는데, 김혜자·나문희 배우의 경우는 주연만 가능할 것 같은 반면, 김영옥 배우의 경우엔 어떤 역이든 소화가 가능해 보인다.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김영옥이 제격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80대의 노년에도 또렷한 대사 전달력은 그의 특장점이다. 1959년 KBS 춘천방송국 아나운서로 입사한 김영옥은 이듬해 CBS 성우로, 1961년엔 MBC 성우극회 1기로 입사했다. 1980년대까지 성우로도 활동해 한국성우협회 명예 회원이기도 하다. 특유의 힘찬 목소리로 소년 주인공을 많이 맡았다. 40~50대에겐 큰 인기였던 만화 ‘마징가Z’의 쇠돌이, ‘로보트 태권 브이’의 김훈, ‘태양소년에스테반’의 에스테반 등이 그의 목소리다. 지금도 EBS ‘건축탐구 집’의 내레이션을 맡고 있으며, 80여권에 달하는 오디오북을 내기도 했다.

김영옥은 1960년대 성우가 배우를 겸업하던 시대 분위기에 따라 1969년 자연스레 배우를 맡으며 ‘투잡족’이 됐다. 당시 노년 배우층이 얕아 30대부터 노인 연기를 맡았는데, 특히 1996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MBC)에선 3세 아래인 나문희씨가 며느리로 등장했다.

김혜자·나문희 등이 ‘한국의 어머니상’으로 큰 인기를 얻는 동안 김영옥은 ‘그들의 시어머니’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바깥에 서 있었다. 하지만 1985년 ‘갯마을’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한 해도 쉰 적이 없다. ‘전원일기’ ‘사랑과 야망’ ‘여명의 눈동자’ ‘남자셋여자셋’‘커피프린스 1호점’(MBC), ‘왕룽일가’(KBS), ‘LA아리랑’(SBS) 등에서 꾸준히 얼굴을 알렸으며, 2004년 ‘올드미스 다이어리’(KBS)에선 욕쟁이 할머니와 욕 대결을 하는 장면이 큰 화제가 됐다. 당시 ‘할미넴(미국의 래퍼 에미넴과 할머니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를 별명으로 얻었는데, 2015년작 영화‘헬머니’에서는 무당할매로 등장해 김수미와 ‘욕배틀’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인기는 시대적 트렌드와 맞아떨어지는 캐릭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가족드라마에서 할머니 역할은 스테레오 타입으로 그려졌는데 최근엔 장르물 등이 유행하면서 여기에 맞는 할머니 연기도 필요해졌다. 김영옥은 가족드라마는 물론, 시트콤·장르물까지 다 어울리는 배우”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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