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앞이 안 보인다'는 기업인들
8월 생산·투자·소비 뒷걸음질
경제 '퍼펙트 스톰' 경고음에도
정부·정치권 대선 경쟁만 몰두
“영국으로 물건을 보내야 하는데 선적할 배가 없고 물류비까지 무섭게 올라 걱정이 태산입니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세계 경제 곳곳에서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전력난 가중, 유가 등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각국의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에 따른 부채 급증과 부실 확대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세계 경제가 여러 악재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위기에 빠지는 ‘퍼펙트 스톰’이 닥칠 수 있다는 비관론마저 나온다.
당장 눈앞에 닥친 것은 에너지 대란이다. 석탄과 석유·천연가스값은 각각 13년과 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세계 석탄 가격의 기준이 되는 호주산은 연초 대비 140% 이상 올라 t당 200달러를 넘어섰다. 특히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다. 원유 가격이 종가 기준 8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14년 10월 이후 7년 만이다. 국내 휘발유 가격도 7년 만에 ℓ당 1700원을 넘어섰다.
경기가 부진한데 유가가 오르면 모든 생산비용이 치솟으면서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 상승도 시간문제다.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5% 상승해 반년째 2%대 상승을 지속하고 있다. 이로써 올해는 2012년 이후 9년 만에 연간 2%대 물가상승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외환 및 금융시장 동향도 심상치 않다. 원·달러 환율은 1년3개월 만에 장중 1200원선을 넘어섰다. 환율은 중국 헝다그룹 위기설이 퍼지기 시작한 지난달부터 본격 상승하기 시작해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인플레 장기화’ 발언이 이어지면서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지난 8월 산업생산과 소비, 투자가 모두 뒷걸음치는 등 악재를 맞고 있다. 기업들이 체감하는 위기 강도는 더 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정책은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요즘 경제 부처가 하는 일은 대출 옥죄기와 부동산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 안정 등을 이유로 금융권의 대출 축소를 압박했던 정부는 서민들이 전세 대출을 제대로 받지 못해 불만이 폭발하자 “전세 대출은 총량 규제에서 빼겠다”고 유턴했다. 탁상 행정, 오락가락 정책이라는 비난을 살 만하다.
사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임기말 정부의 뒷북 행정이 아니라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 경쟁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일성은 “부패 기득권과의 최후대첩”이었다. “좌파 정책으로 대공황을 이겨낸 루스벨트에게 배우겠다”, “불로소득을 뿌리 뽑는 부동산 대개혁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 경제 질서가 뒤틀리지 않겠느냐는 기업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기업이든, 국가든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보이는 적’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미래다. 수출과 내수 경제, 고용 창출에 앞장서야 할 기업인들이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바깥에서는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는데 대선 바람에 정부도, 정치권도 여론 눈치만 보고 있으니 왜 안 그렇겠나.
김기환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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