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준비 부족·굴뚝산업선 반발.. 갈 길 먼 'K택소노미' [2021 세계금융포럼]

김준영 입력 2021. 10. 19. 20:36 수정 2021. 10. 2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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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한국형 ESG' 발굴 절실
난관 산재한 '한국형 기준' 마련
EU택소노미 이미 2020년에 초안 선보여
국내 대기업 ESG이행 채비 마쳤지만
중소기업 비용 부담 증가에 발만 동동
녹색산업 탈락 우려 기업 반발도 과제
이해관계 중재가 성공의 관건
정책 추진 과정서 기업·주민 갈등 증가
ESG 사업 대부분 대규모·장기간 진행
컨트롤타워 없이 '톱다운식' 충돌 커져
민원 창구 단일화 시켜 문제 해결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등 시대 전반을 아우르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여러 난관이 산재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 등 선진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인도 등 신흥국 사이에는 각종 여건과 준비 기간, 패러다임 전환으로 인한 타격 등 여러 면에서 상당한 간극이 보인다. 국내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크다. 글로벌화를 이룬 대기업의 경우 어느 정도 ESG 시대로 이행할 채비를 마친 상황이지만, 중소기업 등 취약한 분야에서는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준, 선진국의 공세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국내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당면한 최대 과제다. 기준을 마련한 뒤에도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정부, 민간, 시민 등 주체별로 다양한 노력도 요구된다.

◆첫걸음부터 험난한 한국형 기준 마련

정부는 국내외에서 기후·환경 위기관리를 중시하는 공감대가 형성됨에 따라 올해 초 녹색금융 추진계획을 마련했다. 지난해 말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후 이 중 녹색금융 부분을 내실화해 공공과 민간, 사회 전반의 인프라 등 분야별로 세부 추진과제를 도출했다.

공공과 인프라의 경우 정부 주도로 전략을 마련하고 시스템·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전담조직을 꾸려 진행되지만, 기업을 중심으로 한 민간의 경우 상황이 만만치 않다. 그나마 물적·인적으로 보다 여유가 있는 대기업은 포럼 및 회계법인 등 외부에 자문하고 내부적으로는 관련 위원회와 전담조직을 꾸려 발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이지만, 중소기업은 첫걸음부터 애를 먹고 있다.

가장 기초가 되는 작업은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를 마련하는 것이다. 특정 산업 영역이나 기업 활동이 녹색산업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우선적으로 판별해주기 때문이다.
EU와 각종 국제기구에서도 제도를 설계하고 규제의 근간을 마련하기 위해 택소노미를 정립하고 세분화·고도화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EU 택소노미는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체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가장 많은 국가 및 국제기구들이 참고하는 지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초안을 선보인 데 이어 내년 시행이 목표다. 규정 법규로서 법적 구속력을 가지며 발효와 함께 회원국 전체에 적용된다.

녹색채권의 인정 기준과 관련한 기후변화이니셔티브(CBI)의 택소노미, 녹색금융 상품의 투자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국제표준화기구(ISO)의 택소노미도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자국 차원의 분류체계를 마련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우리 정부는 당초 올해 상반기 중에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인 K택소노미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선진국이나 국제기구에서도 최소 수년에서 수십년의 준비 기간을 두며 초안을 도출한 뒤 여전히 고도화 작업이 한창인 상황과 비교할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환경부담금 등 ESG와 관련한 비용 부담 증가에 대한 국민의식이 성숙한 상황도 아니고, 기업 간 합의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셈이다. 이 때문에 상반기 중 마련하겠다던 K택소노미는 4분기로 넘어왔지만 감감무소식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향후 녹색산업에서 탈락이 예상되는 산업이나 기업의 반발이 매우 크다 보니 내부적인 기준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와 함께 글로벌 지표로서 참고하려 했던 EU 택소노미의 최종안 마련이 늦어지는 가운데 먼저 K택소노미를 발표하는 것에 대해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초안을 공개한 EU 택소노미는 올해 상반기 중 최종안 발표를 목표로 했다. 우리 정부가 K택소노미를 올 상반기 중 마련하겠다고 한 것도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자력 등 쟁점 분야 포함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장기화하면서 EU 택소노미의 최종안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 K택소노미 마련이 올해를 넘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마련하겠다는 K택소노미는 최종안이 아닌 초안이다. 초안을 토대로 실제 적용 가능한지를 검증하며 시범 적용해보는 기간이 최소 반년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아무리 글로벌 기준이 있다고 해도 국가별로 분류체계에 차이가 있듯 국내 기업별로도 기준에 차이가 있다”며 “글로벌 기준을 우리나라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피는 것처럼, K택소노미를 국내에 적용하는 데 무리가 없는지를 파악하며 조정하고 고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K택소노미 도출 과정에서 대내적으로 가장 큰 장벽은 탈락 가능성이 큰 기업들의 반발이다. 녹색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기존에 제공하던 서비스나 상품을 더 이상 판매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투자나 대출도 모두 막히게 되는 만큼 사업의 존폐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석탄산업 등 탈락이 유력시되던 분야뿐 아니라 정부의 탄소감축 목표가 높아지면서 LNG(액화천연가스) 발전 등 추가 탈락이 언급되는 분야에서도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녹색산업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큰 기업 및 산업에 자금을 투자한 금융권의 반발도 이에 못지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현실에 맞는 정책 실현도 중요

ESG 실현의 토대인 택소노미가 마련된다 하더라도 향후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 및 달성, 기업에 대한 관련 평가지표 마련 등 다양한 단계의 성공적인 이행이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식이다. 국민의 의식 변화 없이 기업과 정부의 태도가 바뀌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철우 성균관대 교수(글로벌경영학)는 “고객인 동시에 직원인 국민이 ESG를 잘하는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에 나선다면 민간에서도 ESG 평판의 중요성을 보다 크게 인식하게 될 것”이라며 “이와 함께 환경이나 지역 커뮤니티 관련 사안 및 사회 불균형 해소, 투명 경영 등 ESG 관련 어젠다를 가진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것도 국민의 중요한 역할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과거 각종 개발 과정에서 정부와 민간, 혹은 민간과 민간 등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 탓에 불필요한 소모를 키웠던 것처럼 향후 ESG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양상이 재연될 수 있다. 박동규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경영학)는 “이미 신재생에너지나 폐기물 산업 등 ESG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주민, 기업 등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이 분출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해관계자의 상황을 외면한 채 제대로 된 중재자나 컨트롤타워 없이 톱다운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많은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ESG와 관련한 정부와 기업의 정책과 사업이 대규모로 장기간 진행될 수밖에 없는 만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갈등을 중재하는 것도 사업 성공의 관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풍력발전 대단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정하고 민원을 해결하는 창구를 단일화해 사업 기간을 단축하고 성공률을 끌어올린 덴마크의 ‘원스톱숍’과 대만의 ‘싱글윈도’ 등의 사례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김준영, 조희연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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