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 칼럼] 대장동 게이트와 건달 정치

박양수 입력 2021. 10. 19. 19:38 수정 2021. 10. 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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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수 콘텐츠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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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정치인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을 가리켜 '건달형'이란 표현을 썼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겐 "욕도 좀 잘하고, 건달기가…(있다)"고 했다. 여야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들을 '건달'에 비유한 게 재밌다. 유 전 의원은 다소 껄끄럽게 들릴 수 있는 발언에 "수재형보다는 약간 건달기가 있어야 지도자가 되더라"는 미사여구를 잊지 않았다.

건달이란 그저 할 일 없이 놀고 먹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불교에서 제석천의 음악을 맡아보는 신이었던 '건달바(乾達婆)'에서 나온 말이지만, 노래와 광대를 천시하는 우리 풍토에서 의미가 격하됐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건달은 정치와 항상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우리 정치사에는 김두한, 이정재와 같은 정치 건달이 등장한다. 중국 역사에선 천하를 모두 손아귀에 쥐고 주물럭거렸던 송나라 시대의 서문경이 유명하다.

배운 것도 없는 일개 촌놈이었던 서문경은 '뇌물'을 잘 활용한 덕분에 벼슬아치로 변신할 수 있었다. 뒤꽁무니로는 온갖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을 다 저지르고 다니는 데도 상관들의 손에 은밀하게 '뇌물'을 쥐어줘서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었다. 진수성찬과 금은보화로 탐관들의 마음을 홀려 수중에 넣은 그는 흐르는 구름을 멈추게 하고,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를 누렸다고 한다.

건달도 능력에 따라 급수가 다르다. 시장통을 뱅뱅 도는 잔챙이 건달이 있는가 하면 정계에서 '재주'를 발휘하는 1급 건달이 있다. 나름의 '의리' 문화도 있다. 그들 사이에서 '큰 형님' 행세를 하려면 지혜와 용기도 필요하다. 또 보스 노릇을 하려면 부하들에게 돈과 재물을 아낌없이 뿌릴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진정한 건달이 되기 위해선 겉으론 고상한 척 비열해야 하며, 부끄러움이 뭔지를 모르는 '두꺼운 얼굴'을 갖춰야 한다.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을 보면서 건달의 뻔뻔함을 떠올린다. 의혹이 게이트 급으로 커지면서 관련자들의 면면이 고구마 줄거리처럼 엮어 나왔다. 의혹도 산더미다. 그런데도 '대장동 게이트'의 몸통을 찾기 위한 검·경 수사과정은 수사 의지를 상실한 듯 굼벵이 마냥 더디다. 단군 이래 최대 게이트라는데 아직껏 드러난 실체가 없다는 게 괴이할 뿐이다. 관련자들도 모두 '남탓'이거나 침묵 모드다. 돈벼락을 맞은 민간사업자 화천대유에서 고문단에 소속됐던 법조인들도 그렇다. 이재명 경기지사 공직선거법 위반 대법원 선고를 전후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를 여러 차례 만난 것으로 의심받는 권순일 전 대법관은 변명도 않고, 아예 입을 닫았다.

'대권 꿈'이 영글어가던 이 지사에게 대장동 게이트는 사실상 마지막 장애물이다. 정치적 생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 "내가 설계했다"며 성남시장 시절에 이룬 최대의 치적으로 내세웠던 게 자승자박이 됐다. 현재 이 지사는 대장동 개발사업의 최종 인가권자였으면서도 민간업자에게 천문학적 특혜가 가도록 사업이 설계된 것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핵심은 그가 과연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를 지시했느냐의 여부다. 야권의 주장대로 '이재명이 몸통'이란 퍼즐 속 그림이 완성되려면 그에 대한 의혹이 풀려야 한다.

좌파 성향의 문재인 정부에는 운동권 출신 중에 어느날 갑자기 청와대에 입성하거나 장관으로 발탁되는 등 '벼락 출세'한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급선무는 반 년도 남지 않은 대선에서의 승리다. '울산시장 부정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원전 비리' '조국 사건' '윤미향 사건' 등 덮어야 할 부정·비리가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게 대장동 게이트다. 여권이 총단결해서 '이재명 지키기'에 나선 까닭이다.

건달들의 정치 놀음의 최대 피해자는 서민이다. 이들은 여야간 '이재명 공방전' 와중에 잊혀진 존재가 됐다. 대장동 원주민들은 수용 당시 3.3㎡(1평) 당 600만원이었던 토지를 그 절반 가격에 팔아야 했고, 입주민들은 분양가 상한제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원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분양받았다. 싼 가격에 땅을 수용당한 원주민, 비싼 값을 치러야 했던 입주(예정) 주민들의 원통한 마음을 누가 달래줄 것인가.콘텐츠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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