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아줌마' 혹은 '탈북자'..가족에게 가려는 련희 씨의 분투

오보람 2021. 10. 1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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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생 김련희 씨는 대구에 사는 '평양 아줌마'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은 북한에 있는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한국에서 분투하는 김 씨의 삶을 그린다.

이어 "(영화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하셔도 된다"면서도 "북한에 딸을 두고 온 김련희 씨가 '내 가족이랑 같이 사는 게 맞지 않느냐'고 했을 때 그게 틀렸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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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그림자꽃'.."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해줬으면"
다큐멘터리 '그림자꽃' 속 한 장면 [엣나잇필름·블루버드픽처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1969년생 김련희 씨는 대구에 사는 '평양 아줌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탈북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한순간도 가족과 고향을 떠나 한국에 정착하려 했던 적이 없다고 한다.

김 씨는 남한에서 두 달간만 돈을 벌어 병원비를 마련하라는 브로커의 꾐에 속아 여권을 빼앗기고 한국에 오게 됐다.

사태를 파악했을 땐 이미 너무 늦었다. 입국하자마자 북송 요청을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고 보호관찰 대상자가 됐다. 그가 탈북자 아닌 탈북자로 한국에서 산 세월은 벌써 10년이 넘었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은 북한에 있는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한국에서 분투하는 김 씨의 삶을 그린다. 세월호 참사 현장을 기록한 '부재의 기억'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이승준 감독이 2015년부터 2018년까지의 이어진 그의 분투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 감독은 19일 시사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일간지 1면에 난 기사로 김련희 씨를 처음 접했다"며 "소위 말하는 탈북자인데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로 '나는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분을 처음 봐 깜짝 놀랐고 굉장히 낯설었다"고 말했다.

그는 기사를 보자마자 "이건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2017년 '부재의 기억'을 찍고 이듬해 평창동계올림픽 공식기록 영화 '크로싱 비욘드'를 만드는 와중에 '그림자꽃' 촬영을 병행했다.

그는 "북한을 다룬 많은 다큐멘터리가 한 가지 방향으로 그려내는 게 불편했다"며 "전쟁 이후 트라우마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고, 남북의 비슷한 점을 찾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 '그림자꽃' 주인공 김련희 씨(오른쪽)와 이승준 감독 [엣나잇필름·블루버드픽처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북한의) 아빠와 딸이 밥 차려 먹고 직장에도 가고 이런 모습들은 (한국과) 똑같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찾는 작업을 하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하셔도 된다"면서도 "북한에 딸을 두고 온 김련희 씨가 '내 가족이랑 같이 사는 게 맞지 않느냐'고 했을 때 그게 틀렸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그림자꽃'에서 김 씨의 1인 시위, 강연, 기자간담회, 베트남으로의 망명 등 북으로 가기 위한 끝없는 시도와 좌절을 담담히 담았다. 평양에 사는 가족도 몇 장면 등장하는데, 이 감독과 절친한 핀란드 감독이 대신 찍어줬다고 한다. 이마저도 성사되기까지 1년이 걸릴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김련희 씨가 이 감독의 영화 제작 제의를 받은 것은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이 모두 수포가 되며 몸과 마음이 고초를 겪던 때였다.

김 씨는 당시 사람들을 아무도 믿지 못했다며 "감독님 전화를 받고 처음엔 두려웠지만, 저를 변호한 변호사님의 소개로 전화했다는 말을 믿고 만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고도 털어놨다.

김 씨는 "그런 분들에게 한 마디만 묻고 싶다. 딸이 북에 억류돼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정치 대립 상태이니까 평생 안 보고 살 자신이 있는지"라며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해주면 안 되겠냐고 얘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에는 자신을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남녘 분들이 저한테서 떨어질 수 없는 제 삶의 한 부분이 됐어요. 평양에 돌아간다고 해도 이런 고마운 마음, 형제와 혈육 같은 마음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사랑하는 남쪽 가족 데리고 평양에 가고, 평양 가족과 남쪽에 오고 싶습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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