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민, 퍼가요~♥

한겨레 입력 2021. 10. 19. 18:06 수정 2021. 10. 1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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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뮤니티의 꽃은 익명성이다.

아무도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말과 태도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제한을 간편하게 해제한다.

오프라인에서 형성하기 어려운 자유로운 담론과 의사소통이 바로 여기서 비롯하는데, 커뮤니티가 온갖 유머와 유행어의 근원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익명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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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연의 MZ커뮤니티 보고서]

[MZ커뮤니티 보고서] 이자연ㅣ대중문화 탐구인

온라인 커뮤니티의 꽃은 익명성이다. 아무도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말과 태도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제한을 간편하게 해제한다. 오프라인에서 형성하기 어려운 자유로운 담론과 의사소통이 바로 여기서 비롯하는데, 커뮤니티가 온갖 유머와 유행어의 근원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익명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여성들은 이름을 가린 후, 숭고한 사제 앞에 선 것처럼 자신의 사정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발언의 한계가 클수록 더더욱 절실히 행했다.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학술지 <미디어, 젠더&문화>를 보면 이러한 진단이 등장한다. ‘여성들은 여성 커뮤니티에서 사적인 경험을 공개하고 교류하면서 협소한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난다. 즉 현실 세계에서 공적 담론에 편입되기 힘든 개인적 이야기에 지지와 공감을 얻으면서 자신의 경험이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여성들은 커뮤니티에 털어놓는 행위를 통해 오랫동안 묵혀온 마음의 짐으로부터 비로소 해방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렵게 꺼내놓은 고민과 갈등이 무단 복제 및 배포된다는 것이다. 더 많은 팔로어를 들여야 이익을 얻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 계정은 여성의 고백을 곳곳에 퍼다 날랐다. 물론 인터넷이란 게 공유와 연결로 구성돼 있지만, 여성에게만 허용한 커뮤니티를 비집고 들어와 비공개 글을 공개해 버리는 것을 정당화하긴 어렵다. 게시자의 동의 여부는 안중에도 없는 공공연한 불펌 시장이 형성되고 있었다.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하릴없이 서로를 걱정하는 것뿐이었다. “익명이어도 고민 상담할 때 너무 자세히 쓰지 마. 누가 퍼갈지 몰라.”

누가 퍼가는지 알 수 없지만 누가 볼지도 알 수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글을 올린 이들은 동년배의 여성들이라는 예상 독자를 설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불펌에 독자 폭은 크게 늘어났고, 알 수 없는 곳에서 조롱과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에스엔에스 콘텐츠화가 되면 지워지지 않고 계속해서 떠도는 것도 문제다. 어느새 ‘잊힐 권리’의 침해는 공인과 연예인을 넘어 일반인에게도 가닿고 있었다.

퍼가는 사람만 문제일까? 댓글난엔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이가 거의 없고, 여성을 비난하느라 과열된 분위기만 고스란히 남아 있다. 퍼간 사람, 보는 사람, 공유하는 사람. 이 삼박자가 낯설지 않다. 이제는 성적 문제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근심거리까지 불법 복제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정말 하나의 놀이겠거니 해도 괜찮은 거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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