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인플레 대응, 머뭇거리면 안 된다

한겨레 입력 2021. 10. 19. 18:06 수정 2021. 10. 1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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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게티이미지뱅크

박복영ㅣ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세계가 인플레이션 불안에 휩싸였다. 지난달 칼럼에서 인플레이션이 단기에 끝나지 않고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는데, 한달 사이에 현실이 되었다.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같은 달 대비 5.4%로, 넉달 연속 5% 이상을 기록하였다. 5% 이상이 석달 넘게 이어진 것은 1990년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이다. 유럽에서는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고 국제유가도 80달러를 넘어섰다.

이런 인플레이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다수의 전문가와 언론은 공급 부족 문제만 주시하며, 1970년대 석유파동기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공급망 차질 문제가 분명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지연되었던 소비의 분출이나 과잉 유동성 같은 수요의 문제도 그에 못지않게 같이 작용하고 있다. 원인 진단이 중요한 이유는, 진단이 올바르지 않으면 대책도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몇달 전만 해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작년 코로나 초기 물가하락의 기저효과가 사라지면, 물가상승률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물가상승세는 9월까지 이어져 이제 기저효과 가설은 설득력을 잃었다.

코로나로 인한 일부 품목의 생산 차질, 즉 공급망 문제도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과 물류 병목현상이 대표적이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으로 전망한 사람들은 이 문제 역시 조만간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전력 부족 사태와 겹치면서 이 문제가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이다.

인플레이션 심화의 또 다른 원인은 화석연료 가격 상승이다. 유럽에서는 천연가스의 공급 차질로 가격이 상승했고, 중국은 국내 석탄 생산과 호주산 석탄 수입 등의 감소로 심각한 전력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이것은 다시 대체연료인 석유에 대한 수요 증가와 유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화석연료 가격 상승세가 쉽게 반전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코로나 전만 하더라도 유가가 상승하면, 에너지 혁명으로 일컬어지던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투자가 확대되어 유가 상승이 억제되었다. 하지만 코로나를 거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유가 하락으로 많은 셰일 유전이 생산을 중단한데다, 최근에는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투자 확대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주요국의 탄소배출 감축과 화석연료 생산 규제 강화 등으로, 장기적으로는 석유나 천연가스 소비도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급망 차질이나 석유 생산 부족만 보면,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공급 측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공급 병목현상을 유발하고 또 심화시킨 근본적 요인은 예상보다 빠른 주요국의 경기회복세에 있다. 공급 확대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부문에서 수요가 공급 능력을 초과하고 있다는 뜻이다.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수출 증가율이나 강한 소비심리, 중국의 전력 소비 급증,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부동산 가격 및 주거비 급증 등은 모두 인플레이션에 수요 측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무엇보다 경기회복은 예상보다 빠른 데 비해 엄청나게 풀린 글로벌 유동성의 흡수가 지체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 유동성은 석유와 같이 일시적 공급 부족이 있는 곳으로 가서 투기적 거품을 형성하면서, 인플레이션을 한층 더 심화시키기도 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우리는 그나마 다행이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5%대지만 우리는 아직 2%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 대응 성공으로 작년의 경기침체 정도가 선진국 중 가장 낮아 전체적으로 경기의 진폭이 작다는 점이 인플레 억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 금리 인상도 이미 시작하고, 가계부채 등 유동성 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다행이다. 강한 제조업 덕분에 공급망이 안정적인 것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버블 붕괴로 해소되지 않는 한,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순전히 공급 측 요인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하면 대응책을 찾기 어렵지만, 수요 측 요인이 작용하는 인플레이션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유동성 흡수가 필요하고 이를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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