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용 경제공약의 결말

김경락 2021. 10. 1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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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에스케이(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후보자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br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 프리즘] 김경락ㅣ산업팀장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경제 공약은 ‘747’로 요약할 수 있다. 선거가 한창이던 2007년 성장률(실질 지디피 증가율)이 5% 수준이던 점을 염두에 두면 임기 동안 연평균 7% 성장 공약은 이목을 끌 만했다. 전면적 규제 완화로 기업 투자를 자극하고, 재정 승수 및 산업 연관 효과가 큰 토목공사를 대대적으로 하면 7% 성장이 가능하다고 봤을 터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코스피 3000’도 약속했다.

실제 그는 거침이 없었다. 당시 최대 쟁점이던 금산분리 완화(은행법 개정)를 제1의 정책 과제로 내세우는 한편 ‘관’의 상징인 초대 금융위원장과 부위원장, 금감원장은 물론 산업은행 회장까지 ‘민’을 임명하며 ‘기업 프렌들리’의 정수를 보였다. 이명박 측근 강만수씨는 경제 사령탑 수장을 맡아 ‘고환율 정책’(원화 가치 절하 유도 정책)과 같은 수출 대기업 밀어주기 정책을 보란 듯 구사했다.

그러나 ‘이명박표’ 경제정책은 얼마 안 가 삐걱거렸다. 취임 첫해 가을 ‘전대미문’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탓이다. 한국 경제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원화 가치는 곤두박질치며, 시중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노출됐다. 건설업·조선업에서 부실이 터지며 채권단은 분주히 발을 놀려야 했다. 주가는 3000은커녕 1000 아래로 꺼지며 국민연금기금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해봐서 아는데”를 입에 달고 살던 이명박도 ‘전에 볼 수 없던’ 위기를 맞아 허둥대며 꿈(?)을 접어야 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공약은 ‘줄푸세’에 빚지고 있다. 물론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내놓은 경제 공약이긴 하다. 줄푸세 핵심은 ‘줄’, 즉 감세다. 그는 2012년 대선 땐 ‘국민 행복’을 강조하며 복지 강화도 함께 내놓았다. 이런 터라 진보 쪽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공격했지만, 사실 이것은 억울한 공격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역대 정부에서 실질 세율을 가장 많이 올린 대통령이 바로 박근혜다. 집권 기간 조세부담률이 2%포인트 가까이 뛰어올랐다. 세목과 명목 세율은 거의 건드리지 않았지만, 깃털만 뽑아(공제제도 개편) 거대 기업의 실효세율(외국납세 포함)을 상당 부분 끌어올렸다. 연 8천만원 이상 받는 월급쟁이 세 부담도 크게 늘었다.

이는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는데다 저성장에서 비롯된 연이은 세수 ‘펑크’란 환경 때문이었다. 대통령이라고 한들 구조 내지 환경을 무시하고 공약이나 자신의 신념대로만 경제정책을 밀어붙일 수는 없다. 그랬다간 외려 경제는 사달이 나고 민심은 흉흉해진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약속이 어긋났다고 보는 이들은 그 근거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을 꼽는다. 국가 기강을 흔든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연루자를 풀어줬으니, 특혜 시비를 넘어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데 문 대통령이 ‘결과는 정의롭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을 바꿔 그런 결정(여기서 가석방 결정 주체는 법무부 장관 아니냐는 말은 하지 말자)을 내렸을까. 아니라고 본다. 취임 당시에 고점을 찍은 경기는 이후 내리막을 탄데다, 민간 투자 부진은 심각한 수준으로 내달렸다. 지난해엔 코로나19 충격이 찾아왔다. 호경제가 지속했다면 이 부회장은 지금도 감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이 재벌과의 거리두기를 포기하고 이재용·정의선 등 재벌 총수를 직접 만나 등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도 4분기 연속 민간 투자가 감소세를 보이던 2019년 상반기였다. 신념도 불황 앞에선 무력하다.

새 물결을 앞둔 이즈음 흘러간 이야기를 적은 이유는 최근 여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의 후보 수락 연설 한 대목이 떠올라서다. “국가 주도의 강력한 경제 부흥 정책으로 경제성장률 그래프를 우상향으로 바꾸겠다.” 패기 넘치는 이 공언의 결말이 궁금하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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