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 평양냉면을 만들어 보자 [문정훈의 푸드로드]

2021. 10. 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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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DEEP INSIGHT
육수·제면 노하우만으로는 차별화 어려워져
경쟁자가 카피 못할 香 가진 메밀 육종 도전
"다양한 향미 함유 호분층 늘린 품종 만들자
"연구개발비 대비 국내 메밀면 시장 너무 작아
비만 막는 펫푸드 가능성·해외 수요까지 조사
코로나로 잠시 멈췄지만 '냉면 혁신'은 진행 중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예전엔 순면을 뽑아내고 감칠맛 나는 육수를 뽑아내는 것이 굉장한 노하우였지만, 이젠 그 노하우가 다 알려지고 또 업체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다 비슷해졌어요. 마음먹고 따라 하려면 거의 똑같이 만들 수 있는 게 평양냉면이 돼 버렸습니다.” 함께 냉면을 먹던 ‘봉피양’의 김 대표가 고민을 토로했다. “우리가 만들어 냈던 차별화 요인이 이제는 사라졌어요. 뭘 해도 금방 카피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차별화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그렇다고 평양냉면의 기본적인 속성을 파괴하면서 차별화하는 것은 기존 고객에 대한 배신이라 더 고민입니다.” 나는 돕고 싶었다.

 경쟁자가 따라올 수 없는 평양냉면

냉면은 매우 한국적인 음식이다. 우리가 즐기는 평양냉면은 이미 서울식 평양냉면으로 변형됐지만 그 본질적 특유함, ‘차가운 국물에 차가운 면’은 그대로다. 전 세계적으로 차가운 면을 먹는 식문화는 꽤 있고 차가운 국물을 즐기는 곳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차가운 면을 차가운 국물과 함께 들이켜는 문화는 한국식 냉면이 유일하다.

평양냉면 국물의 원형은 차가운 동치미다. 이 동치미에 꿩, 닭, 소, 돼지 등의 고기를 오랫동안 끓여 낸 육수를 적절히 섞어 맛을 만든다. 그러나 서울식 평양냉면의 최신 트렌드는 동치미의 새콤한 맛은 사라지는 방향이고, 맑고 진한 고기 국물이 강조된다. 옛 기록에 의하면 평양에서 따뜻한 소고기 요리인 어복쟁반을 먹다 남은 육수에 메밀면을 말아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서울식 불고기에 면을 넣는 유행도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메밀면을 말아 먹던 어복쟁반의 육수가 식으면 지금의 서울식 평양냉면의 국물과 비슷하다. 이 차가운 고기 국물에 툭툭 끊어지는 식감의 메밀면을 말아야 팬시(fancy)하고 힙(hip)한 서울라이트(Seoulite)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평냉’이 된다.

차별화된 평양냉면이란 무엇일까? 레시피를 바꿔도 조리 기술이 발전한 지금 금방 비슷하게 따라온다. 그래서 육수 뽑는 기술이나 제면법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 무엇을 차별화해야 경쟁자가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평양냉면을 만들 수 있을까? 사흘 밤낮을 고민했다. 그리고 그날 밤 봉피양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메밀을 새로 육종해보실까요?” “네?” “진짜 끝내주는 메밀향을 가진 메밀 품종을 개발해 그걸로 면을 만드는 겁니다. 레시피는 금방 비슷하게 카피하지만, 품종은 법으로 명백하게 보호되기 때문에 경쟁자들이 함부로 카피할 수 없어요. 누군가 비슷한 품종을 다시 개발한다고 해도 최소 7~8년은 걸릴 겁니다. 그때쯤 우리가 개발한 품종을 팔아도 되고요.” 정적이 흘렀다. 혹 이 무슨 해괴한 이야길 하느냐며 욕먹지는 않을까 심장이 두근거리는 찰나, 전화기 건너편에서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수님! 이거 기가 막힌 아이디어인데요?”

 메밀향이란 무엇인가?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의 모든 역량이 메밀향 연구로 집중됐다. 그리고 곡물 육종 전문가인 진중현 세종대 교수도 이 산학협력 연구에 함께 뛰어들었다. “여러분, 메밀향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나타난다. 하나는 “아니, 그 메밀의 쌉싸름한 향을 모르세요?” 다른 하나는 당황함의 침묵이다. 메밀면의 식감은 아는데, 그 면에서 나는 향은 명확히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메밀향이란 무엇인가?

메밀은 생육기간이 짧아서 1년에 두 번 수확 가능한데, 메밀꽃이 폈다 진 자리에서 메밀 알이 굵어지면 수확한다. 메밀은 형태와 맛에 따라 크게 ‘쓴메밀’과 ‘단메밀’로 나누는데, 제면에 쓰이는 메밀은 기본적으로 단메밀이다. 쓴메밀은 알이 작고 겉껍질이 단단하게 붙어 있어 도정(搗精)이 불가능해 주로 볶아서 메밀차로 쓴다. 제면에 쓰는 단메밀은 독특하게 생겼는데, 낱알 모양이 동그랗지 않고 삼각뿔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삼각뿔 모양의 메밀은 짙은 색의 겉껍질로 둘러싸여 있고, 도정 과정을 통해 제거한다. 메밀면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거뭇한 티끌 같은 것이 보이는데, 도정 과정에서 혼입된 메밀 껍질이다. 그런데 면에 따라 이 껍질이 많이 보이거나, 또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품질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여기에는 각 업체의 제면 의도가 담기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대체로 이 껍질이 많이 들어가 색이 어두운 면에서 메밀향이 더 진하다는 시각적 자극을 받는다. 실제 메밀의 겉껍질에는 루틴(rutin)이라는 물질의 농도가 매우 높은데, 이 물질은 쓴맛을 느끼게 한다. 루틴의 쓴맛이 궁금하다면 사과 껍질, 은행, 아스파라거스에서 느꼈던 쓴맛을 떠올려 보자. 이 쓴맛이 주로 루틴에서 오는 쓴맛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메밀향에서는 쓴맛이 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맛과 향은 분명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메밀의 딱딱한 겉껍질을 벗겨내면 속에 얇은 피막처럼 보이는 내피가 있고, 내피가 붙어 있는 초록빛의 호분층(糊粉層)이 보인다. 색이 초록색이라 ‘녹분’ ‘녹살’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이 호분층 안쪽 중심부에는 하얀색의 배유부(胚乳部)가 있고 그 속에 배아(胚芽)가 함께 분포하고 있다. 구성비로 보면, 바깥 껍질이 전체 중량의 20% 정도고, 내피와 호분층이 12%, 중심의 배아가 포함된 배유부가 68%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배유부에는 주로 전분이 분포돼 있기 때문에 향이 별로 없다. 면을 만들면 면의 몸체와 식감을 구성하는 부분이다. 메밀의 향은 내피와 호분층에 집중돼 있다. 이 층에 어떤 향미 물질이 들어가 있는지를 보면 메밀향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메밀의 호분층에는 다양한 향미 물질이 들어가 있는데, 주로 노나놀(nonanol) 계통의 향미 성분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이어서 옥타놀(octanol), 헥사놀(hexanol) 계통의 향미 성분이 감지된다. 인간은 노나놀과 옥타놀 계통에서 주로 오이, 꽃, 과일, 감귤 등에서 나는 싱그러운 향을 주로 느끼고, 헥사놀에서는 주로 풀향, 풋과일의 풋내 등을 느낀다. 메밀의 향은 이런 복잡한 향의 복합체다. 이것이 메밀 향의 정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메밀면에서 미묘한 과실향을 느낀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때론 비린취가 난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 성분들은 휘발성인 데다 열에 매우 취약하다. 메밀을 실온에 오래 두면, 특히 도정한 메밀에서는 더 급격히 그 향이 사라진다. 따라서 열풍 건조한 뒤 매대 위에서 오래 보관한 메밀 건면을 활용한 음식으로 메밀향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메밀 도정 후 최대한 빨리 제분, 반죽, 즉시 적당한 온도의 물에서 짧게 익혀내는 평양냉면식 제면법에서 메밀 본연의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메밀, 정말 까다로운 친구다.

자, 그럼 면을 입안에 넣었을 때 메밀향이 폭포수처럼 입안을 가득 채우는 초격차 평양냉면을 만들기 위한 메밀 육종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나는 명쾌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연구 중인 진 교수에게 “호분층이 지금보다 훨씬 두꺼운 메밀을 육종해줘”라고 무덤덤하게 이야기했고, 학창 시절 룸메이트였던 진 교수는 “야! 육종이 메뉴 주문처럼 그렇게 단순한 건 줄 알아? 굉장히 복잡한 절차와 시간이 걸리는 정교한 작업이라고!”라며 이에 소요되는 노력과 시간, 그리고 비용에 대해 열띤 설명을 해줬다. 특히 작물의 ‘재배적성(栽培適性)’에 대해 설명할 땐 아찔함까지 느꼈다.

재배적성은 바로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성어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인데, 똑같은 품종의 작물이더라도 재배 토양과 환경이 달라지면 그 결과물이 전혀 다른 표현형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새로 육종할 메밀 품종을 어떤 토양과 환경에서 재배할 것인지를 사전에 고려해 전국의 여러 후보 재배지에서 시험 재배하며 품종과 토양 및 환경의 궁합까지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에 봉피양의 김 대표는 기업의 미래를 걸고 연구개발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외식업체로서 매년 억대의 비용을 장기간 투입하는 것은 보통 결단이 아니다. 우리 연구진은 이어서 전국의 메밀 재배 및 사용 현황,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평양냉면 식당의 면의 맛, 향, 식감 등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또 진 교수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메밀 품종을 전부 수집해 분석에 들어가기로 했다.

 얼마만큼 먹어봤니, 평양냉면?

며칠간 우리나라 평양냉면 리더 업체들의 냉면부터 다양한 국가와 재배환경에서 재배한 메밀로 제면한 평양냉면까지, 대략 40여 그릇이 넘어갈 때였다. 우리는 속으로 우리 랩의 구호 ‘누가 좋아서 먹나? 일이니까 먹지!’를 끊임없이 외치며 사명감을 가지고 시식했다. 그리고 몇 가지 흥미로운 패턴을 찾아냈다.

우리나라 평양냉면의 메밀면은 크게 네 가지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그룹은 면이 굵고 높은 탄력성이 특징인 집단이었고, 여기에는 예컨대 서북면옥, 을밀대, 평택고여사집냉면 등의 냉면이 포함된다. 두 번째 그룹은 면의 경도가 높고 표면이 거친 것이 특징인 집단이다. 면의 표면이 거칠면 국물이 면발에 잘 배어들어 면에서 감칠맛과 염도가 잘 느껴진다. 우래옥, 정인면옥, 판동면옥의 면이 그런 특성을 갖고 있다. 세 번째 그룹은 면의 색이 짙고 루틴의 쓴맛이 진하고 뚝뚝 끊어지는 식감을 지닌 집단이다. 서관면옥, 평양옥, 봉피양 등의 면이 그런 특징을 갖고 있다. 마지막 네 번째 그룹은 면발이 가늘고 하늘거리며 탄성도가 비교적 높은 특성을 지닌 면으로, 장충동 평양면옥, 도곡동 평양면옥, 필동면옥 등이 그러했다. 물론 이 네 그룹에 속하지 않는 다양한 특성의 면도 존재했다.

우리는 각 업체가 제면에 사용하는 메밀을 국내산, 미국산, 중국산 중 어느 것을 사용하는지, 면에 사용하는 메밀의 함량이 얼마나 되는지,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어떻게 되고, 또 네 그룹별로 재무적 성과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지 등 다양한 측면의 검토를 거쳤고 그 분석 결과를 육종의 방향, 제면의 방향에 반영하기로 했다. 또한 중국과 미국의 메밀 품종 특성, 또 이 품종들을 각각 다른 재배지에 재배했을 때 다르게 발현되는 면발의 특성까지 분석했다. 그 결과 역시 미래의 초격차 냉면을 위한 육종 방향에 반영했다. 메밀 전분 내 아밀로스 함량 조정, 제분 수율을 올리기 위한 종실 크기 조정 등 다양한 요인이 고려됐다.

이리하여 메밀 신품종 육종을 통해 초격차 평양냉면을 만들기 위한 기본 전략이 세워졌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육종 연구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사업 타당성을 조사해보니 향후 투입될 연구개발 비용 대비 국내 메밀면 제면 시장의 규모가 너무 작았다. 국내에서 단메밀이 제면 이외에 사용되는 경우는 메밀전을 부치는 메밀가루 시장 말고는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신품종 메밀로 평양냉면 말고 어떤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을까? 그래서 국내에서 새롭게 열 수 있는 시장에 대한 논의와 시장 조사를 추가로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메밀의 펫푸드로서 가능성까지 조사했는데, 메밀의 특성상 돼지에게 먹이면 오히려 체중 증가가 정체되는 현상이 관찰돼 사료로 적합하지 않다는 해외 보고서를 발견한 직후였다. 흥미롭다. 경제성 동물은 살을 빨리 찌우는 것이 중요한데, 비만에 시달리는 반려동물에겐 메밀 사료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메밀로 펫푸드를 만들려면 개와 고양이가 좋아할 수 있도록 하는 가공 기술이 들어가야 하는데 갈 길 또한 멀다. 다른 기회를 찾아야 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메밀 품종으로 해외 시장 공략 가능성을 조사했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메밀 수요가 해외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판단 내렸을 때쯤, 코로나19가 국내에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급변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식업체들이 위기에 처했다. 수십 개 지점을 가진 봉피양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지출을 줄여서라도 직원은 내보내지 않아야겠다는 대표의 결정을 우리는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 잠깐 정지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혁신은 진행 중이다. 냉면의 맛은 장인의 손맛이 아니라 과학 기반 하이테크의 맛이고 연구개발 투자의 맛이다. 비단 냉면뿐이겠는가. 두부도, 떡볶이도, 막걸리와 순대도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연구로만 혁신을 달성할 수 있다.

■ 문정훈은

KAIST 경영과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로 푸드비즈니스랩을 이끌고 있다. 푸드비즈니스랩은 더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노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 흥미로운 작당을 하는 곳으로, 농식품의 가치를 발굴하고 상품화해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먹거리에 세련되고 까다로운 소비자가 이 세상을 구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연다는 믿음 아래 끊임없이 소비자와 소통한다. 자신의 취향을 모르거나 주는 대로 먹는 소비자들이 자기 주도적 소비를 하도록 도움으로써 획일화된 농식품 산업의 관행을 깨뜨리고 다양성의 세계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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