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이유로..중앙대 성평등위, '에타' 익명글 9일만에 폐지

임재우 입력 2021. 10. 19. 16:36 수정 2021. 10. 1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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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내내 소속 학생들 향한 위협글 이어져
"학생회 제도권 바깥에서 활동 이어갈 것"
폐지 뒤 지지 서명에 9000명 가까이 참여
성평등위가 성소수자와 연대하기 위해 올해 진행한 온라인 ‘중앙퍼레이드’ 알림 포스터. 사진 중앙대 성평등위위원회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성평위)가 온라인 공간에 폐지 의견이 올라온 지 단 9일 만인 지난 8일 폐지됐다. 2010년대 들어 서울 시내 대학들의 총여학생회가 연달아 폐지되고 있지만, 총여학생회의 대안 기구마저 폐지된 상황은 전례가 없다. 성평등위 소속 학생들은 앞서 온라인상 개인 정보가 유포되거나 가해위협까지 받아왔다.

시작은 지난달 30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중앙대 학생이 대학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린 글이었다. “성평위가 여성주의인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특정 성별만 생각하는 편향된 방향성을 갖고 운영되고 있다”는 내용의 연서명에 이후 406명이 동참했다. 중앙대 총학생회는 “회원 300인 이상의 연서로 (확대운영위원회) 개회 전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는 학생회칙을 들어 성평위 폐지를 안건으로 올렸다. 8일 열린 확대운영위에서는 성평위 폐지의 대안으로 ‘반성폭력위’와 ‘학생소수자인권위’를 신설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모두 부결됐다. 결과는 출석 인원 101명 중 59명의 찬성. 성평위가 폐지되기까지 열흘이 채 걸리지 않았다.

1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송지현 성평위 위원장은 ‘페미니즘 기조의 활동’을 이유로 이뤄진 이번 폐지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성평위가 페미니즘을 기조로 활동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폐지의 근거가 될 수 없죠. 성평위 활동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토론과 숙의를 거쳐서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했어야지, 이런 식으로 폐지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성평위는 지난 2014년 중앙대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뒤 총여학생을 대신해 총학생회 산하 기구로 설치됐다. 학생 자치기구로서 학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정혈(생리)용품 무료 제공 등 복지 사업을 해왔다.

이번 폐지는 ‘급작히 돌출한 사건’이 아니다. “성평위가 하는 모든 사업을 비난하고 잘못을 추궁하는 시도”들이 에브리타임을 중심으로 수년간 지속되어왔다. 송 위원장은 ‘에브리타임’에 성평위가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만을 위한다’는 식의 글이 자주 올라왔다고 했다. “가령, 학우들에게 정혈용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을 진행했는데 ‘왜 여자만을 위한 사업을 하냐’는 글이 올라왔어요. 장애인 복지 사업을 한다고 비장애인을 차별한다고 하지는 않잖아요. 성평위와 같은 인권사업은 불평등한 사회를 좀더 평등하게 만들어보고자 하는 사업인데, 실질적인 불평등에 대한 고려 없이 ‘이쪽도 해줬으니까 저쪽도 해줘야 한다’는 식의 양적 재단은 진정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평위 활동에 대한 반감과 위원들을 향한 ‘사이버불링’은 종종 위험 수위를 넘었다. 에브리타임에는 이름과 학번을 내걸고 활동하는 성평위 소속 학생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글 중에는 살해 협박도 있었다. 2019년에는 성평등위원장의 개인 전화번호까지 노출되었고, 반감을 가진 이가 직접 연락을 하기도 했다.

서울 동작구 중앙대 성평등위원회 사무실. 사진 중앙대 성평등위원회

문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학사 일정이 2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학내 공론장 기능을 에브리타임이 사실상 독점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2019년에도 성평위를 해체하자는 여론이 있었는데, 그때는 공청회를 진행해서 폐지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었거든요. 물리적인 공간에서 성평위와 연대하시는 분들은 항상 자기 얼굴과 신변을 걸고 나와주셨어요. 그런데 비대면 학사 일정이 지속하다 보니 이미 여성혐오 발언으로 가득한 에브리타임이 유일한 공론장이 된 것이죠.”

에브리타임에서 ‘놀이’처럼 이어지던 성평위 활동을 향한 문제제기가 익명의 연서명을 바탕으로 해 순식간에 학생 다수 의견으로 과대대표되었다. 확대위에서 익명 발의자의 입장은 총학생회를 통해 대독되었고, 정작 당사자인 성평등위원장은 발언할 수 없었다. 투표에서 발언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평위 폐지’라는 결론이 내려질 때까지 별다른 토론은 없었다. 송 위원장은 이번 폐지가 수년간 누적되어온 대학사회 일각의 안티 페미니즘 정서가 코로나를 거치며 학내 공론장 역할을 대체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표출되고, 실력 행사로 이어진 사건이라고 본다.

학생회칙에 규정된 ‘절차와 다수결에 따라’ 폐지되었다고는 볼 수 없을까. 송 위원장은 총학생회의 기계적인 대응이 ‘다수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했다. “효율을 이유로 다수의 반대에 늘 부딪히는 게 인권·복지 사업이잖아요. 그런 사업을 하는 기구를 다수주의에 따라서 폐지했다는 것 자체가 불평등한 구조를 방치하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폐지 결정 후 성평위 위원들은 “학생회라는 제도권 밖에서, 저희의 존재를 지지하는 학우 분들을 위해서 사력을 다해” 활동하기로 했다. 성평위 활동이 멈췄다고 학내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대의 움직임도 있다. 성평위 활동을 지지하는 취지의 성명서에는 9000명에 가까운 학생과 시민들이 이름을 올렸다. “성평등위원회가 없어졌다고 학내 페미니스트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성평위가 실패한 것이 아니고, 총학 산하 기구이면서 외부의 공격에서 취약한 지위였던 성평위의 독립성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고 봐요.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좀 더 단단한 자치권과 독립성이 보장된 성평등 전담 학생자치기구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학생사회에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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