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밀라논나' 같은 롤모델이 될 수 있을까?

한겨레 2021. 10. 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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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쿵쾅]내 이름은 김쿵쾅
'선배 여성'의 위로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유튜버 ‘밀라논나’ 장명숙씨가 미소 짓고 있다. 사진 이승원 작가
지난 3월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면접 당사자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면 ‘예민한 사람’ 취급하는 게 기득권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해결방법이잖아요. ‘예민하다’는 말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오히려 칭찬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예민한’ 그가 <한겨레> 온라인 칼럼으로 독자를 찾아갑니다. 20대 여성인 자신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독서 경험을 엮어낸 칼럼 ‘내 이름은 김쿵쾅’ 입니다.
※ ‘쿵쾅’은 단단하고 큰 물건이 서로 부딪칠 때 크게 나는 소리를 뜻합니다. 일부에선 성차별에 분노하고 성평등을 말하는 페미니스트를 가리켜 ‘쿵쾅이’라고 부릅니다. 페미니스트를 입막음하려는 이들이 ‘쿵쾅’의 의미를 변형·독점하려는 시도를 ‘김쿵쾅’이라는 필명을 통해 유쾌하게 맞받아주려 합니다.

제가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습니다. 바로 <밀라논나>인데요. 채널의 주인공은 ‘장명숙’이라는 70대 여성으로,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밀라노에 패션 디자인 유학을 떠난, 페라가모와 막스마라 같은 유명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를 한국에 소개한, 이탈리아 정부에서 명예 기사 작위를 받으신 엄청난 능력자입니다. 유튜브만 보다가 지난주에는 얼마 전 나온 밀라논나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라는 에세이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는 밀라논나의 삶과 그 가운데서 작가가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쓰인 책입니다. 밀라논나에게 열광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중얼거린 말은 “와, 멋있다.” 였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이 ‘왜 나를 포함한 2030 여성들은 밀라논나에 열광하는가?’였습니다. 밀라논나의 책을 읽다 보면, ‘진짜 어른이란 이런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절로 경외감이 듭니다. ‘온고지신’을 의인화하면 밀라논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우리가 기성세대에게 바랐던 그 모든 것, 예를 들면 ‘꼰대’처럼 함부로 나의 삶을 판단하고 재단하지는 않으면서도, 긴 세월 쌓은 연륜으로 때로는 나의 멘토가 되어 내가 힘들 때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의 불합리함과 부조리함에 2030세대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미안해하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밀라논나는 인간으로서도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점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멋진 사람이라면 팬의 연령대나 성별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야 하는데 밀라논나의 팬층은 2030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왜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밀라논나에 열광할까요? 저는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밀라논나가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은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이 사라지기 너무 쉽습니다. 특히 출산과 동시에 강제로 사회에서 사라지기를 요구받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라져버리는 여성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내가 조언을 얻을 만한 30대 후반~40대 여자 선배는 그 수부터가 남자 선배보다 적습니다. 숫자가 적으니 ‘나도 저 나이가 되면 회사에, 사회에 없는 사람이 되는 걸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고,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벌써 결혼은 하더라도 출산은 절대 하지 말고, 이직 시에는 기혼 여성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혼인신고도 하지 말든가 아니면 하더라도 아주 늦게 하는 게 좋겠다 등을 고민하죠.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밀라논나는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지금까지도 ‘살아남아’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자기 자신을 가꾸고, 70년을 넘게 살며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신세대들에게 지혜를 나누어주고 있지요. 저는 2030 여성들이 밀라논나를 보며 ‘나도 밀라논나처럼 될 수 있다’ ‘나도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나도 70대가 되어서도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라는 희망과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밀라논나처럼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되어 ‘임신과 출산으로 잠시 자리를 비워도’ 회사에서 함부로 나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 없도록 능력을 키우겠다는 야망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 시절에도 했는데 지금이라고 못하겠어?’하는 생각이 조금 든달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밀라논나의 멋진 삶을 담은 에세이집,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는 나이가 들어서도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몇살이 되어도 사회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은, 더 큰 야망과 목표를 가지고 싶은, 그리고 ‘선배 여성’의 위로가 필요한 모든 2030 여성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우리가 모두 밀라논나 같은 ‘선배 여성’이 되어 우리를 보고 자랄 어린 여성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이 보다 의미 있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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