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집에 보내달라"..'그림자꽃' 남한살이 평양시민의 10년 외침

조연경 기자 입력 2021. 10. 1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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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있는 내 집, 평양으로 보내주세요"

10년간 남한에 갇혀있는 평양시민 김련희 씨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이승준 감독)' 언론시사회가 19일 오전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렸다. 이승준 감독과 김련희 씨는 상영 전 무대인사를 진행, 이후 사전 촬영된 간담회 영상을 통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림자꽃'은 '부재의 기억'을 통해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노미네이트 쾌거를 이룬 이승준 감독의 신작이다. 12회 타이완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시안 비젼 경쟁부문 대상, 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 경쟁부문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개봉지원상을 수상하고, 2020년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월드 쇼케이스 프로그램에 초청되기도 했다.

의사 남편과 딸을 둔 평양의 가정주부였던 영화 주인공 김련희 씨는 지난 2011년 간 치료를 위해 중국의 친척집에 갔다가 브로커에게 속아 한국에 오게 된 인물이다. 대한민국 입국 직후 북한 송환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간첩 기소와 보호관찰 대상자가 됐다. 그녀는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여권위조, 밀항과 자살 시도까지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부재의 기억'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뤘던 이승준 감독은 '그림자꽃'에서도 이야기해봐야 할 사안에 대한 문제 제기에 나선다. 김련희 씨는 여전히 "나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외치고, 감독은 영화를 통해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김련희 씨가 정말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남북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남북문제에 관심이 있었다는 이승준 감독은 "해외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가면 북(北)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방향은 대체로 한 방향이다. 근데 그들은 북에 직접 들어간다. 북측 사람들 만나서 인터뷰도 한다. 그런 것들이 감독으로서는 부러우면서도 불편했다, 전쟁 이후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는 욕망을 계속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승준 감독은 2015년 김련희 씨의 모습부터 영화에 담아냈다. 2019년 완성까지 4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 일간지 1면에 나온 김련희 씨의 기사를 보고 곧바로 연락을 취했다는 이승준 감독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나는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분은 처음 봤다. 보편적인 탈북자와는 다른 느낌이라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이어 "경북 영천 플라스틱 재생공장에 일하고 계셨을 땐데 찾아간 날 첫 인터뷰를 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도 찍으면서 1박2일간 있었다. 만난 후 '이 영화를 할지 말지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기사를 본 순간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을 것 같아 카메라를 들었다"며 "김련희 씨는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됐지만 정체성은 아니라고 본다. 그 다름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련희 씨는 이승준 감독과 첫 만남에 대해 "내가 남쪽에 온지 4년째 되던 해였다. 오직 가족에게 돌아갈 생각 뿐이었다. 밀양 시도도 하고, 위조 자료도 만들고, '나 간첩이에요. 잡아가세요'라고 직접 신고도 해 감독살이까지 하고 나왔던 시기라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모두가 나를 반대하고 나쁘게만 바라본다'는 무서움이 컸고 악플도 엄청 달려서 좀 고립이 돼 있던 상황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승준 감독 역시 처음에는 '같은 부류의 사람'일 것이라 막연히 예측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승준 감독은 김련희 씨를 변호했던 변호사를 통해 연락을 취했고, 김련희 씨는 변호사 이름을 듣고 비로소 마음을 열었다. 또한 '나는 여기에 살 생각이 없다'는 김련희 씨의 이야기와 사정을 고스란히 다룬다는 점에서 '그림자꽃' 제작에도 동의했다는 후문이다.

다큐멘터리 내 신선하고 신기하면서도 독특한 부분은 김련희 씨가 현재 북한에 거주 중인 부모님, 남편, 딸과 영상통화를 하고, 영어를 배우는 딸의 일상과 아버지와 딸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을 실질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에 머물고 있었던 재미교포 지인과 이승준 감독의 친구인 핀란드 감독의 도움을 받아 삽입할 수 있었던 신이다.


이승준 감독은 "페이스북 영상통화를 예정돼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애초 북측에서 허락을 하지 않았다. 중간다리 역할을 해줬던 재미교포 분이 '통화는 안되겠다. 문자로 이야기를 해라'라고 해서 그 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상통화가 연결이 됐다. 아무도 예상을 못한 상황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얼굴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찍을 수 있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밝혔다.

또 "북쪽 촬영에 대해서도 많이 궁금해 하실 것 같은데, 당연히 저희가 직접 갈 수는 없었다. 연출 겸 카메라 감독 출신의 핀란드 감독을 해외 영화제에 다니면서 알게 됐다. 그 친구가 2016년과 2017년에 한번 씩 평양에서 촬영을 해줬다. 물론 그 촬영도 쉽지는 않았다. 성사 되기까지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다양하지만 김련희 씨의 외침은 단 하나다. "집에 가고 싶다. 내 고향에 보내달라." 영화는 UN(유엔) 앞 기자회견, 베트남대사관을 통한 망명 신청,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북한 선수들·관계자들과 마주하기 위해 애쓰는 김련희 씨의 모습을 전한다. 때마다 경찰과 대치하고 끌어내지거나 길바닥에 쓰러지는 결론을 맞이하지만 김련희 씨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잡고 싶은 지푸라기였다.

김련희 씨는 "중국에 병을 치료하러 갔다가 '한 두 달만 한국에 갔다 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브로커 말에 속아 오게 됐다. 단 한 순간도 '한국에 정착해 살겠다'는 생각을 한 적 없다"며 "남녘에 3만 명의 탈북자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 행군 때 배고파서 넘어왔거나 북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해 온 사람들이 이어지고 이어진 무리다. 한국에 살 생각을 하고 왔다는 것이다. 난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남한살이 10년은 과거 모든 것에 대해 '무조건 거부'였던 김련희 씨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바꿔놓은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물 한 방울도 싫었다. 다 나를 힘들게 하고, 억제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원망도 많이 했고 거부감이 컸다"는 김련희 씨는 "이젠 정도 들고 내 삶의 한 부분이 됐다. '평양에 계속 있었다면 이런 따뜻한 혈육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김련희 씨는 "정부, 특히 통일부 관계자들이 '그림자꽃'을 꼭 관람했으면 좋겠다"며 "핀란드 감독이 영상을 찍어왔듯 우리 민족끼리 외국인을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한다. 매번 정부 정책에 따라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나. 이걸 언제까지 할건지, 사상·정치를 다 떠나 깊이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너무 슬픈 비극이다"고 토로했다.

김련희 씨는 "'그림자꽃'이 70년 분단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 지구상에 사는 우리는 인종, 피부가 달라도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인간들에게는 똑같이 가족이 존재한다. 누구도 소중한 가족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며 "내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이 한 걸음이라도 빨라지길, 힘을 실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넌 틀렸어'가 아닌 다름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는 이승준 감독은 "어떻게 말을 해도 사상이나 생각이 바뀌기는 힘들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내는 방식이 폭력적인 형태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언어적 폭력도 마찬기지다. 많은 댓글도 봐 왔고, 보고 있는데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줄 시대가 아닌가 싶다"고 어필했다.

이승준 감독은 "그래서 통일, 남북문제의 관심있는 분들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들이 '그림자꽃'을 본다면 그나마 선입견을 덜 갖고 보지 않을까 싶다. 좋은 남북관계를 만들고, 더 나아가 통일을 만들어낼 세대는 젊은 세대니까"라며 "딸을 가진 엄마가 그냥 내 가족에게 가고싶은 것이다. 가족이라면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맞지 않나.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질문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의 방향을 알려주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고 바랐다.

'그림자꽃'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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