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국민의힘이 꽃길 깔아준 이재명의 '빅쇼' / 손원제

손원제 입력 2021. 10. 19. 14:36 수정 2021. 10. 2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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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대장동 개발사업 논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8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손원제 논설위원

지금까지 이런 국감은 없었다. 이것은 ‘나훈아쇼’인가 ‘심수봉쇼’인가.

분명한 건 이재명의 완벽한 독무대였다는 점이다. 8시간 동안 모든 방송과 유튜브 채널, 포털과 뉴스 사이트를 지배했다. 일부러 하려면 대선 자금 수백억원을 몽땅 때려넣어도 안될 일이었다. 그걸 공짜로 했다.

모든 의혹을 말끔히 풀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이 불 지펴온 ‘그분’ 의혹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렸다. “인사권자 입장에서 도둑들의 물건을 되찾아오는 과정에 여러 사람이 동원됐는데 일부가 제 기대와 요청에 반해 도둑들과 연합했을 거라는 문제제기가 있다. 인사를 잘못한 것, 제가 지휘하는 직원 일부가 오염돼서 부패에 관여한 점에 대해선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에 출석해 강조한 말이다.

두가지 메시지를 담았다. 첫째, 지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자꾸 변명하고 회피하려 한다는 인상을 줬는데, 끊어낸 것이다. 이를 통해 관리 책임 너머의 연루 의혹에도 확실히 선을 그었다. 둘째, ‘도둑들’은 이재명 아닌 국민의힘 쪽 관련자임을 명토박았다. ‘돈 받은 자=범인, 장물 나눈 자=도둑.’ 팻말을 수시로 꺼내 보이며 요점만 쏙쏙 꼽아 보여줬다. 그동안은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대장동 1타 강사’를 자부해왔다. 이제 이 과목의 ‘톱’은 이재명으로 각인됐을 것 같다.

국민의힘은 ‘국감에서 이재명의 가면을 확 찢겠다’고 호언해왔다. 허풍이었다. 오히려 조명을 밝혀주고, 레드카펫을 깔아주고, 꽃가루까지 뿌려줬다. ‘안습’에 가까웠던 국민의힘 의원들의 퍼포먼스에 대한 리뷰는 생략한다. 원조 ‘1타 강사’가 한 말만 짧게 인용해보자. “히딩크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라. 그렇게 못할 수가 없다.”(원희룡, 19일 <교통방송>(TBS) ‘뉴스공장’)

압권은 김용판 의원의 ‘돈다발 사진’ 공개였다. ‘공동 공갈’ 등 혐의로 수감 중인 박아무개씨의 자필 진술서를 제시하며, 이 후보에게 조폭 돈 20억원이 건너갔다는 의혹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 후보에게 직접 전달된 현금 5천만원을 찍었다는 증거 사진이 실은 박씨가 ‘나 돈 많이 벌었다’며 페이스북에 ‘플렉스’(과시)를 시전할 때 쓴 사진이었음이 곧장 드러났다. ‘조폭 돈 전달’ 주장 자체의 신뢰성을 허무는 반전. 이재명 쇼에 대한 몰입도만 더 높여줬다.

국민의힘이 애초 ‘천화동인’ 주인이 이재명이라는, 가능성이 썩 커 보이지 않는 의혹을 부풀리기보다 유동규에 대한 관리 책임, 초과이익 환수 조항이 들어가지 않은 경위를 면밀하게 짚고, 국민들의 박탈감을 달랠 대안은 있는지를 추궁하는 데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이 후보를 날리는 한 방이 될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 잘 하는 이재명’이란 평판을 약화시키고 민주당 경선 후유증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타격을 극대화할 순 있지 않았을까. 오히려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을 일정 부분 털어내며 지지세 회복 계기도 잡은 셈이 됐다. 국민의힘에서 보면 ‘한탕주의’가 불러온 ‘참사’요, 민주당에서 보면 ‘세런디피티’(뜻밖의 기회나 행운)다. 물론 ‘국감 돌파’를 택한 이 후보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된 결과라는 건 ‘동전의 이면’이다.

국민의힘은 이제 20일 열리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 국감 2차전을 벼르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기세’인데, 기운 판을 뒤집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이 치밀한 전략과 준비 없이 임한다면, 2차전도 ‘이재명쇼 앵콜 공연’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가 2차전 국감에 참여하는 것이 국민의힘에 약간의 위안이 될 가능성은 있다. 심 후보가 대장동 사업 설계의 구조적 취약점을 파고든다면 말이다. 다만 국토위원 29명 중 1명일 뿐이라는 점이 제약 요인이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가 약점으로 지목돼온 특유의 치기를 드러내기를 더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이 후보는 18일 국감에서 대체로 차분했으나, 기세가 기운 뒤 자료 제출 요구 등에 대해 상대를 얕잡아보는 듯한 일단을 드러냈다. 심장이 쫄깃했을 참모가 꽤 있지 않았을까.

과장된 프레임 씌우기는 안 먹힌다는 게 뚜렷해졌다. 정쟁을 넘어 개발 이권 구조를 혁신할 대안 모색을 볼 수 있기를 또 한 번 기대해본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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