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회 질의 비웃은 이재명, 권위 실추 자초한 여야 의원들

박정엽 기자 2021. 10. 1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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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여당 대선 후보가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에 기관증인으로 출석해 야당 의원이 질문을 하는 동안 열차례 소리 내어 웃었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이 지사가 성남 기반 조폭 국제마피아파로부터 20억원을 받았다’는 한 재소자의 제보를 소개하는 동안 있었던 일이다. 김 의원은 7분15초간 ‘조폭 연루설’ 질의를 이어갔는데, 이 지사는 다른 질문을 들을 때와 달리 “흐흐흐” 등 큰 소리를 마이크를 통해 내보내며 웃었다. 김 의원 발언이 진행되는 도중 방송 중계에 노출된 웃음 소리만 총 열 차례다.

국감에서 피감기관의 기관증인이 감사를 담당하는 국회의원들 발언 중에 웃는 일은 거의 없다. 아무리 가벼운 상황에서 농담이 오가더라도 피감기관 신분으로 쉽게 웃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한 국감이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당시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점심시간이 됐는데도 제한시간을 넘겨 질의를 이어갔는데, 야당 의원 중 일부가 “빨리하고 밥먹으러 가야된다”고 했고 이에 김 의원이 “이게 밥먹는 것 보다 중요하다”고 받아치자 장내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러나 기관증인인 성지용 중앙지법원장은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꼬리가 움직이는 것조차도 참아내느라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반면 지난 18일 국감에서 이재명 지사는 야당 의원 발언을 비웃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래서 저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기자회견을 하시죠” 라고도 했다. 국회 정식 회의에서 보장되는 의원들의 ‘면책 특권’ 없이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느냐는 조롱이었다. 이 지사는 “학예회 하는 것도 아니고”라고도 했다. 적잖은 야당 관계자들은 이를 질의 수준을 낮잡아 하는 말로 받아들였다.

겨우 ‘웃음’ 하나에 너무 정색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행정부·사법부 소속의 힘센 조직의 기관장들이 국회에 출석해서 몸가짐을 조심하려고 애쓰는 것은 권력을 위임한 국민들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 때문일 것이다. 구성원들이 긴장하지 않으면 자칫 국민과 국회를 존중해야한다는 명제가 빈말이 되기 쉽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은 다음과 같은 ‘국회 모욕의 죄’도 정하고 있다. “증인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 출석하여 증언함에 있어 폭행·협박, 그 밖의 모욕적인 언행으로 국회의 권위를 훼손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여당의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 자격을 부여받았지만, 이재명 지사는 지난 18일 ‘기관 증인’으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감에 출석했다. 아무리 질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비웃음이나 비아냥으로 조롱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국감 사회를 맡은 민주당 소속 서영교 행안위원장은 이 지사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경고를 주지 않았다. 위원장과 상임위를 이끄는 여야 간사 위원인 박재호 박완수 의원도 이 지사의 행동을 방관하기만 했다. 첫 웃음이 나왔을 때 서 위원장이나 의원들이 제지했다면 이 지사가 열 차례 웃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행안위 소속 야당 위원들은 질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이 지사의 비웃음을 자초했다. 김 의원은 특히 제보자의 주장의 신빙성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더 검증하고 정제된 질문을 했어야 했다. 여당 위원들은 피감기관 앞에서 지켜야할 국회의 권위를 잊었다. 같은 당 대선 후보일수록 더 엄격한 잣대로 국회에서의 겸손한 몸가짐을 요구했어야 했다. 선거에서의 유불리만 앞세운 여야 의원들의 당리당략 셈법이 국회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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