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군이라 더 간절했을 타격왕..가운데서 등 터진 KIA 2군의 하루 [김은진의 다이아몬드+]

김은진 기자 2021. 10. 1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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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지난해 KBO리그 시상식에서 1·2군의 각 부문 1위를 차지한 선수들이 수상 뒤 기념촬영 하고 있다. 연합뉴스


KIA 박기남 퓨처스 수비코치는 지난 18일 하루종일 마음고생을 했다. 팀이 듣도보도 못한 경기조작 논란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KIA가 지난 8~9일 문경에서 치른 상무 2연전에서 상무 서호철을 타격왕으로 밀어주고자 대충 수비해 안타를 만들어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누군가가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KIA를 신고했고 KBO가 조사에 착수한 상태에서 18일 오전에는 한 언론매체가 ‘경기조작’이라며 의혹을 보도했다.

7일까지 0.381이었던 서호철의 타율은 상무의 이 최종 2연전에서 6타수 4안타를 쳐 0.388로 올라섰다. 이미 2일에 일찌감치 시즌을 종료한 롯데 김주현이 0.386으로 1위였으나 서호철이 역전해 타격왕을 차지했다.

2연전에서 친 4안타 중 2안타가 번트로 만든 내야 안타였다. 올시즌 좀처럼 번트를 대지 않던 서호철이 마지막 이틀 연속 번트를 대 모두 성공시켰다는 것이 ‘밀어주기’ ‘경기조작’ 의혹의 출발점이 됐다. 서호철은 기습번트라도 대 안타를 만들고 싶었고, 번트 대는 타자가 아니니 정상 수비하던 KIA는 잡지 못한 번트를 안 잡았다고 의심받으며 난데없이 남의 팀 타자를 타격왕으로 밀어준 팀이 됐다. 수비코치가 가장 먼저 의심을 받았다.

특히 최종전이었던 9일 첫 타석에서 서호철이 3루쪽에 댄 번트 안타에 논란이 집중됐다. 강타자 상대 몇 발짝 물러나 한 수비가 최초 보도를 통해서는 ‘3루수가 좌익수 자리로 이동했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왜곡되기도 했다. “하라는대로 움직였다”고 했다는 KIA 내야수 A의 발언도 보도됐다. 해당 경기 3루수는 강경학이었다. 인터뷰 자체를 한 적이 없는데 A로 의심받은 강경학을 일부에서는 신고자로 추측하기도 했다. ‘코치진의 지시에 강제로 번트안타를 내줘야 했던 강경학이 내부고발을 한 것 아니냐’는 상상의 나래가 여기저기서 무궁무진하게 펼쳐졌다.

KBO리그에서 명예롭게 은퇴해 올시즌 퓨처스리그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에 첫발을 내딛은 이범호 KIA 2군 감독이 “우리는 정확한 경기를 했다”고 굳이 인터뷰까지 해야 할 정도로 18일 KIA 2군에는 선수, 코치, 감독까지 선수단 전체에 폭풍이 쓸고 갔다.

KBO의 조사 결과는 기다려야 하지만 하룻밤 사이 사태는 급반전됐다. 타격 1위를 같이 다투던 롯데 선수 김주현이 오히려 KIA 선수에게 연락을 취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KIA는 이미 KBO에 관련 상황들을 정리해 제출해놓은 상태였다. 정정당당하게 승부했으며 상무의 청탁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는 점과 당시 경기 상황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타격왕이 그 2연전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조차 롯데의 연락을 받고서야 알았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김주현의 이름이 어쩔 수 없이 등장했다. 결과를 묻는 롯데 구단 관계자의 연락뿐 아니라 경기 전에는 김주현이 직접 KIA 포수에게 ‘서호철에게는 안타주면 안 돼’라는 문자 메시지를 늦은 밤 보냈기 때문이다.

김주현이 보낸 문자는 친분 있는 사이라면 충분히 주고받을 수 있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청탁 혹은 경기 조작 시도라고 하면 그 역시 비약이 될 수도 있다. 타격왕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2군 선수의 절박한 심정으로 해석했기에 KIA 역시 지난 18일 하루 언론 등 외부에는 일절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팀이 청탁받고 경기를 조작했다는 실체 없는 의혹으로 난리가 났는데, 알고보니 정작 2위를 한 선수가 오히려 그런 내용의 연락을 취했었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이 큰 의미가 된다. 현실적으로 타격왕 결과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는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KBO는 조사를 진행 중이다. 제보에 실체적인 근거가 있는지부터 정확하게 조사해야 한다. 제보 자체가 정당한 것이었다면 제보자의 신분은 보호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KBO는 제보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도 밝혀야 한다.

KBO리그는 매년 정규시즌이 끝나면 시상식을 연다. 1군 투·타 각 부문 1위 선수들이 상을 받고 축하받는 자리에 2군 선수들도 함께 한다. 북·남부리그를 나눠 투수는 평균자책과 다승, 타자는 타율·홈런·타점 1위에 상이 주어진다. 1·2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선수보다는 오히려 2군에서 꾸준히 출전해 성적을 쌓는 선수들이 받게 되는 상이다. 언젠가 1군 선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달리는 2군 선수들에게는 이 타이틀 하나가 거대한 보상이자 데뷔 이후 가장 큰 명함이 되곤 한다.

최종전에서 타격왕 1·2위가 뒤집힌 것은 1군 경기였으면 연일 집중 화제가 되고도 남았을 명승부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심과 주변의 억측들로 2군 선수들의 뜨거운 명승부에 얼룩이 묻었다. 코로나19 집단 격리로 가장 늦게 시즌을 마치면서도 1승이라도 더하고자 열심히 뛰었던 KIA만 중간에서 등이 터지고 말았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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