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호건 재판으로 본 언론중재법 개정안

미디어오늘 입력 2021. 10. 1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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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 사설] 미디어오늘 1322호 사설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고커 미디어와 헐크 호건으로 알려진 프로레슬링 선수 테리 볼레아의 소송전은 미디어 업계에 큰 시사점을 던졌다. 지난 2012년 뉴욕 기반의 가십 매체로 잘 알려진 고커 미디어 창립자 닉 텐트와 편집국장 A.J 돌레리오는 호건으로부터 고소를 당한다. 헐크 호건이 친구 배우자와의 성관계를 맺는 영상을 고커 미디어가 고커닷컴 홈페이지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소송 쟁점은 헐크 호건을 공인으로 볼 수 있는가, 영상은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공익에 부합하는가였다.

고커 미디어는 동영상 공개에 대해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스토리 추적하기'라는 자사 보도 방향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호건은 프로레슬링 선수로서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쇼이며 고커 미디어가 공개한 영상은 사인 '테리 볼레아'의 사생활을 침해한 것이라고 맞섰다.

언론의 표현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도 쟁점이 됐다. 법원은 호건 손을 들어줬다. 고커 미디어가 공개한 영상은 사생활에 해당하고 뉴스 가치가 없다는 것. 공익과 상관없는 게시물을 공개한 행위 역시 보호받을 수 없다는 판결이었다. 법원이 부과한 배상액은 무려 1억1500만달러에 달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배상액이었다. 배상액을 감당하지 못한 고커 미디어는 파산 보호 신청을 제기했고 회사를 경매에 부쳐 타 방송사에 소유권을 넘겼다.

▲ 넷플릭스 '침묵을 거래하는 손' 갈무리

거액의 배상 판결로 인해 미디어제국이라 불렸던 매체가 망한 것을 두고 혹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호건의 승소 뒤엔 커다란 반전이 있었다. 겉으로는 언론 자유를 오인한 한 매체의 몰락으로 비치지만 이면에는 고커 미디어에 피해를 입은 억만장자의 소송 지원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지난 2007년 고커 미디어는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의 성 정체성을 공개했다. 이에 피터 틸이 호건의 소송을 지원하며 고커 미디어에 대한 보복에 나선 것이다. 피터 틸이 등장하면서 돈과 권력을 이용해 매체를 망하게 할 수 있음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라며 오히려 수정헌법 1조를 침해한 것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고커 미디어 보도는 비판받아야 하지만 자본이 배후로 나선 소송에서의 승리는 향후 비판 언론에 대한 자본의 재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소송전을 추적한 라이언 홀리데이는 책 '컨스피러시-미디어제국을 무너뜨린 보이지 않는 손'에서 “많은 사람이 틸의 고커를 향한 음모에서 드러난 사실을 접하고는 분노했다. 그들은 언론의 '사기 저하'를 우려했다”며 “사람들이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서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게 될 것을 경계했다”고 밝혔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논거인 '전략적 봉쇄소송에 대한 우려'와 맥이 닿아있다.

'고커 미디어 vs 헐크 호건' 소송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찬반 주장의 근거를 동시에 보여준다. 우리 현실로 눈을 돌리면, 왜곡 보도 등으로 언론 피해가 늘고 있음에도 배상액이 현저히 낮아 법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고, 그 반대편에 징벌적 손배를 적용하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법을 악용해 정당한 언론 보도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똬리를 틀고 있다. 정치권이 한발 물러서 오는 연말까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각계 의견을 들어 입법키로 했지만 양쪽 주장이 어디쯤에서 타협점을 찾을지 미지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협업 5단체가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위원회'를 발족해 언론 보도 피해와 언론 보도 자유 문제 전반을 공론에 부치고 개선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그래서 소중하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의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해법의 실효성 문제는 부차적이다. 보도 피해를 구제하면서도 언론 자유를 보호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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