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워치]정기선의 '경영 수업'은 끝났다

안준형 2021. 10. 1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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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 사장 승진..지주·한국조선해양 대표로
그룹 지원 맡다가 핵심 계열사 책임경영 역할
마지막 퍼즐은 증여세..배당금 활용 전망

최근 현대중공업그룹의 사장단 인사를 보면,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부사장의 승진이 눈에 띈다. 특히 '사장'이라는 새 직급보다 '한국조선해양 대표'라는 직함에 더 눈이 간다. 그가 수년간의 경영 수업을 끝내고 실전에 투입된다는 의미여서다. 학습을 마치고 경영 시험대에 오른 정 사장이 오랜 부진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조선업 흐름을 어떻게 탈 수 있을지 관심이다.

시원한 '빅 배스' 뒤…정기선 실전 투입

지난 12일 현대중공업그룹은 사장단 인사를 통해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그간 그의 행보를 보면 '승진 속도'엔 큰 의미를 두긴 어렵다. 2013년 수석부장을 시작으로 2014년 상무, 2015년 전무, 2017년 부사장, 2021년 사장 등으로 빠르게 승진해온 만큼 속도감은 무뎌졌다.

그 대신 이날 인사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정 사장의 대표 내정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정 사장을 그룹의 핵심 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와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에 내정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고,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 3사를 거느린 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정 사장은 지난 2017년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를 맡았지만 이번과 무게감은 다르다. 작년 한국조선해양의 매출은 15조원에 이르지만, 현대글로벌서비스는 1조원에 불과하다. 정 사장이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의 대표를 맡은 만큼 경영 성과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경영여건은 좋지 않아 보인다. 올 상반기 한국조선해양의 영업손실은 8298억원에 이른다. 선박 주요 원자재인 후판 가격이 오른 탓이다. 지난 2분기 강재 가격 인상에 대한 공사손실충당금 8960억원을 반영하며 잠재 부실을 털어냈지만 오는 3분기 실적 전망도 밝지는 않다. 강재 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고 1~2년 전에 '저가 수주'한 선박이 도크(선박건조대)를 채우고 있어서다.

하지만 정 사장 입장에선 '빅 배스(Big Bath)' 덕에 홀가분하게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됐다. 이번 인사에서 승진한 가삼현·한영석 부회장과 함께 조선사업부문의 재건을 이루는 것이 그의 몫이다.  

정 사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2002년 현대그룹에서 분리한 현대중공업그룹은 그간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지배구조를 유지해왔다. 최대주주인 정몽준 이사장은 2002년 이후로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19년 만에 오너 일가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셈이다.

영끌 승계…증여세 어떻게 낼까

지배구조 측면에선 지분 승계 문제가 남아있다. 현재 현대중공업지주의 최대주주는 정몽준 이사장이다. 정기선 사장이 부친이 보유한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26.6%를 물려받아야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되는 구조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정공법'을 택했다. 2018년 정 사장은 KCC가 보유한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1%를 인수했다. 인수대금 3540억원 중 3040억원은 증여받고, 나머지 500억원은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자녀가 소유한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승계 자금을 마련하는 과거의 대기업 방식과는 다른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승계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지다. 정몽준 이사장이 보유한 현대중공업지주 지분을 물려받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2018년 증여세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그는 1500억원 가량의 증여세를 5년에 걸쳐 나눠 내고(연부연납) 있다. 여기엔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2.12%도 담보로 잡혀있다. 2018년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1.45%를 담보로 빌린 주식담보대출도 아직 남아있다. 

당장 가장 현실적인 재원 마련 방법은 배당이다. 현대중공업지주가 2018년 이후 넉넉한 배당을 이어가면서 정 사장은 매년 150억원대 배당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올 상반기에도 현대중공업지주는 총 1307억원 규모의 중간 배당을 실시했다. 지난 4년간 정 사장이 받은 배당은 총 53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승계 자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 이사장 지분을 물려받으려면 1조원 가량의 증여·상속세가 필요하다. 재계에서는 나머지 지분 역시 과거 증여분이나, 삼성 등의 선례처럼 증여·상속 지분에 대해 주식담보대출이나 연부연납 등으로 해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준형 (why@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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