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정 많은 내 하소연 언제라도 받아주는 고마운 文友 선배

기자 2021. 10. 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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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김정옥님

오늘도 거침없이 토(吐)하고 말았다. 급체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긴 급체라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으니 말이다.

억울한 제 사정이나 감정 따위를 발설하지 않고 스스로 삭힌다는 것은 숨을 참는 일만큼이나 힘든 일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왜 나는 번번이 토해내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하긴 내 진즉 알고는 있었다. 함량 부족에서 기인한 줄을.

한 뼘 남짓한 내 속을 불편하게 한 것은 말 화살 때문이었다. 누구를 향한 활시위였던 간에 이미 날아간 화살을 구태여 돌려 잡고 씩씩거리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참 못나 보였다. 하여 쓸모를 다한 볼펜에 감정을 실어 옆 쓰레기통으로 획 집어 던져버렸다. 책상 옆 휴지통에는 잡다한 것들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 미처 비우지 못해서였다. 게다가 볼썽사나운 것들을 가려줄 뚜껑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냉큼 비우지 못하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순간 머리를 훌 때리고 지나가는 상념들에 아뿔싸.

속엣말을 걸러내지 않고 나불거리는 경솔하기 짝이 없는 내 입, 내 하소연을 받아주느라 매번 힘들었을 그 어떤 사람이 번쩍 떠올랐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솔향기 그윽한 문우 선배 김정옥 님이었다. 일전에 속상한 일들로 옹총망총 지껄여대는 바람에 그분의 마음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새삼 염려스럽다. 넘치는 쓰레기통을 보면서 점점 더 생각이 깊어져 버렸다. 인드라망처럼 얼기설기한 인간관계에도 나름의 원칙과 질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심리적 거리의 지나친 유착관계를 경계해야 함을 내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또 낭패를 보아야 했다. 서로의 시각적 차이를 파악하고 인정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관계의 파열음에 자못 당혹스러웠다. 내 딴에는 마음의 근육을 탄탄하게 유지·관리한다고는 하였다. 하지만 어느 틈에 마음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떠돌며 의기소침해 있었던 것이다.

아픔을 이겨내지 않고서는 더 나은 곳으로 건너가거나 단계 위로 올라설 수도 없는 법, 그렇지만 끝내 품위를 잃지 않을 자정 능력은 왜 내게는 없었던 것일까. 왜 나는 누더기 같은 말들을 녹이지 못하고 토해놓아 가까운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것일까. 끝까지 나의 옳음을 강요하면서 말이다. 어느 동물의 세계에서는 그렇다고 들었다. 죽음을 예감하면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 오롯이 혼자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거기에다 감히 쓸쓸한 죽음이라느니 외로운 죽음이라느니 제 맘대로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은 최상위 포식자라 우쭐대는 인간들이었을 것을. 무엇 하나 제대로 주장하지도 못하는 비겁한 나에게는 혼자 죽어가는 동물이 차라리 커 보였다.

지성이라 포장한 나의 동물적 자아본능은 불의를 보면 지나치지를 못한다. 이 또한 병이라면 병일 것이다. 하여 아귀의 탈을 쓰고 뒤돌아서서야 입찬소리를 내지를 수 있었다. 묵묵히 듣고 계시던 그분께서는 행여 누가 들을세라 엿볼세라 야리야리한 그 몸으로 불경스러운 거대 언어들을 꿀꺽 삼켜버린다. 그러니 내 아무리 허튼소리를 던졌어도 결코 새는 법이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의견이나 소신을 피력할 대상이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하물며 ‘나는 언제나 너의 편’이라며 곁을 내어주기까지 하였으니…. 한주먹도 되지 않는 내 심장이 여태 터지지 않고 그럭저럭 탄력을 유지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꼬질꼬질한 내 입소리를 수습하여 자정하느라 힘들었을 그 마음까지는 여태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에 휴지통을 말끔하게 비워놓았다. 이쯤에서 나는 또 새로운 번민을 하고 있었다. 나의 이 소갈머리로 진정 누구에게 곁이 되어줄 수나 있을까 하고.

최아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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