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단이 총리 쫓아내고 국가기념식..무법천지 아이티

이본영 2021. 10. 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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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는 아리엘 앙리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독립 영웅 장자크 데살린(1758~1806)의 215주기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아이티에서 가장 강력한 갱단인 지9(G9)이 행사장에 쳐들어온 것이다.

3개월 전 대통령이 암살된 아이티에서 총리가 국가 기념행사 도중 갱단에 쫓겨 도피한 사건까지 발생해 이 나라 치안 붕괴 상황의 심각함을 보여줬다고 <가디언> 이 18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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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 중 총격 가해 총리 일행 도피
최대 갱단 두목 등장해 기념식 진행
대통령 암살, 경제난, 갱단 활개 혼란
"더는 못 참겠다" 시민들은 총파업
선교사 일행 16명 피랍 미국 전전긍긍
18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한 시위 참여자가 불타는 타이어를 배경으로 ‘셀피’를 찍고 있다. 포르토프랭스/AP 연합뉴스

지난 17일,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는 아리엘 앙리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독립 영웅 장자크 데살린(1758~1806)의 215주기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엄숙한 기념식 중 총성이 연이어 울리자, 총리와 경호 인력 등 일행은 황급히 차를 타고 대피했다. 아이티에서 가장 강력한 갱단인 지9(G9)이 행사장에 쳐들어온 것이다.

3개월 전 대통령이 암살된 아이티에서 총리가 국가 기념행사 도중 갱단에 쫓겨 도피한 사건까지 발생해 이 나라 치안 붕괴 상황의 심각함을 보여줬다고 <가디언>이 18일 보도했다.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관들이 배치됐었지만 갱단을 막지 못했다.

황당한 상황은 총리 일행의 대피로 끝나지 않았다. 곧이어 갱단 두목 지미 셰리지에가 등장해 총리 대신 기념식을 치른 것이다. 셰리지에는 아이티의 고관들이 행사 때 입는 흰색 정장까지 입고 나왔다.

9개 갱단의 연합을 뜻하는 지9을 이끄는 셰리지에는 ‘바비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포르토프랭스의 빈민 지역에서 공권력도 건드리지 못하는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다. 그가 이끄는 갱단은 수십명을 살해하고 방화, 납치,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조브넬 모이즈 전 대통령과도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셰리지에는 지난 7월 모이즈가 암살당하자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현직 경찰관일 때인 2018년 빈민가 주민 20여명이 살해된 사건 등에 연루된 것으로 지목돼 미국 재무부의 제재 명단에도 올랐다. 하지만 셰리지에는 소수 부자들이 민중을 착취한다며, 빈민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의적을 자처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미국 선교사 일행이 갱단에 납치된 이튿날 발생했다. 어린이들이 포함된 미국 선교사 일행 16명과 캐나다인 1명은 16일 버스로 포르토프랭스 외곽의 고아원을 방문하는 길에 납치됐다. 무장한 납치범들은 살인을 일삼고, 상인들을 갈취하며, 피랍자 몸값을 뜯어온 조직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호수’로 불리는 카리브해에서 아이티의 ‘실패 국가’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미국도 골치를 썪고 있다. 미국 정부는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을 파견했지만 18일까지 피랍자들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인도적 위기를 이유로 망명을 요구하는 아이티인 1만명이 미국-멕시코 국경에 몰려드는 등 아이티를 탈출하는 사람이 줄을 잇고 있다. 미국이 2019년 유엔 평화유지군을 15년 만에 아이티에서 빼는 데 동의한 게 실수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티의 국가적 위기는 2010년 50만명의 사상자를 낸 대지진 이후 더욱 악화됐다. <로이터> 통신은 경제 위기와 치안 부재 속에 올해 들어 9월까지 발생한 납치 사건이 최소 628건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발생한 대통령 암살은 정치적 혼란을 극에 달하게 만들었다. 암살에 연루된 아이티인들과 아이티계 미국인, 콜롬비아 전직 군인들을 비롯해 26명이 체포됐다. 지난달 법무장관이 앙리 총리도 연루 의혹이 있다며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했다가 해임당하기도 했다.

아이티인들은 불안과 공포가 이어지는 상황에 항의하며 18일 총파업에 나섰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상점, 학교, 관공서가 문을 닫은 가운데 포르토프랭스 시민들이 “더는 못 참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포르토프랭스의 도로에서는 바리케이드로 쌓은 타이어가 불탔고, 일부 시민들은 운행에 나선 택시를 공격하기도 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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