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역과 일상의 공존을 위하여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장기간 공존해야 하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지난 1월부터 단체 줄넘기를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9월 11일, 이제는 청으로 승격한 당시 질병관리본부의 마지막 브리핑에서 정은경 현 질병관리청장이 한 말입니다(올해 9월 아닙니다). 요새는 ‘위드 코로나’가 언젠가 해야 할 남겨진 숙제처럼 인식되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함께 산지 1년 9개월이 넘었습니다. 코로나19가 무섭다지만 언제까지고 집에만 있을 순 없습니다. 어느 정도 활동은 하되 3T(검사·추적·치료)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며 사람 간 접촉 빈도를 줄이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유행은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제로’를 추구하는 대신 방역과 일상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균형은 쉽게 깨어지기도 합니다. 마치 한 사람이 점프에 실패하면 모두가 시합에서 지게 되는 단체줄넘기와 같이, 방역 수칙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면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감염이 퍼집니다. 해외 여러 나라에서 폭발적인 감염확산으로 인한 의료체계 붕괴의 위기를 겪으며 생명도, 일상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을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그런 상황은 비껴갔습니다. 유행이 심각했던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누적 확진자 수와 누적 사망자 수 모두 매우 적습니다. 경제도 선방했습니다. ‘그림 1’의 빨간 점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2021년 경제 회복 전망입니다. 주요국 중 우리나라가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이는 ‘평균적으로’ 잘했다는 뜻이지 고통이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다수 시민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할 동안 뒤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장기간 집합금지 중인 고위험시설 업주 및 종사자, 심야 영업제한의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들, 격무에 시달리는 의료진, 방역담당 공무원, 보건소 직원들,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은 대면 서비스업 종사자,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취약계층 학생들이 있습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사교모임, 종교행사, 여행 등 소위 ‘고위험 활동’에 놓여있던 사람들의 인내도 길어졌습니다. 불운한 감염자들은 필요 이상의 사회적, 심리적 비용을 치러야 했습니다.
해외와 비교하여 평균적으로 잘한 것은 어떤 사람에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 실패하면 모두 실패하는 단체줄넘기처럼, 누군가를 쓰러지게 남겨둔 채 이 팬데믹과의 전쟁에서 오래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방역체계 질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마침 백신 접종률이 오르면서 확진자 수가 증가해도 의료체계에 부담이 덜 가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4차 유행은 지난 겨울유행에 비해 감염 규모도 더 크고 지속기간도 더 길지만, 중환자 수는 그때와 비슷하거나 더 적은 수준이며 사망자 수는 그때의 1/3~1/2 수준입니다(그림 2·3 참고). 아직 남아있는 고령층 미접종자 약 100만여 명 중에서 접종률을 더 끌어올리면 중환자와 사망자 수는 많이 늘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백신 접종으로 인해 의료체계 부담이 줄었지만 싱가포르나 이스라엘처럼 방역 완화 후 확진자가 급증하면 우리나라의 지금 시스템으로 감당해내기 어렵습니다. 접종자 위주로 역학조사 및 검사 범위를 조정하고, 재택치료를 확대하고, 중환자 병상을 확충하는 등 감당할 여력을 늘리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감염의 사회적, 심리적 비용을 줄여가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합니다.
시스템을 갖추기 전까지는 여전히 조심성이 요구됩니다. 영업시간 제한 등 비용 대비 효과가 적은 영역은 지금이라도 풀되 너무 갑자기 감염이 늘지 않도록 마스크나 모임 인원 제한 같이 비용이 적은 조치는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합니다. 유행 상황에 따라 서서히 예전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만 너무 서두르면 독이 됩니다. 대신 모두를 위한 조치로 인해 손실을 입는 소수에게 신속하고 넉넉한 보상을 반드시 제공해야 합니다.
단체줄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쳐 쓰러진 사람들을 그냥 둔 채로 시합을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힘이 남은 사람이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부축하듯, ‘위드 코로나’는 모두가 공평한 짐을 지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거리두기 단계 조정은 이 과정 안에 한 요소로 포함되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준비된 만큼만 완화해야 급격한 감염 확산 후 다시 되돌아오는 고통을 피할 수 있습니다.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코로나19와의 공존을 위해, 모두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인내가 요구되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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