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석봉'이 될 것인가, '한호열'이 될 것인가

이학준 기자 2021. 10.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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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공공기관이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면서 지원자에게 나이와 학력 등을 수차례 캐물었다는 제보를 받았다.

출신지·가족관계·학력·신체조건 등을 비공개로 한 채 진행되는 블라인드 채용에서 출신 대학교가 어디인지 묻는 것은 문제 소지가 있었다.

내부고발자를 용납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그는 배신자이자 외부자로 배척될 수밖에 없고,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내부자로 남기 위해 부조리에 눈을 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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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공공기관이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면서 지원자에게 나이와 학력 등을 수차례 캐물었다는 제보를 받았다. 출신지·가족관계·학력·신체조건 등을 비공개로 한 채 진행되는 블라인드 채용에서 출신 대학교가 어디인지 묻는 것은 문제 소지가 있었다. 사건 당사자이자 취업 준비생이었던 제보자는 졸업한 대학교 이름을 밝혔지만, 결국 최종 면접서 탈락했다. 그는 꼭 기사를 써달라고 했다.

제보자는 며칠 뒤 “다시 생각해 봤다”며 기사화를 원치 않는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를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답은 뻔했기 때문이다. 기사가 나오면 제보자가 누군지 밝혀지는 것은 시간 문제고, 다른 공공기관 지원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보자의 신분이 지원자가 아닌 내부 직원이었으면 어땠을까. 채용 과정의 불공정함을 제대로 언론에 알릴 수 있었을까. 아마도 마찬가지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내부고발자를 용납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그는 배신자이자 외부자로 배척될 수밖에 없고,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내부자로 남기 위해 부조리에 눈을 감게 될 것이다.

제보자를 배신자로 낙인 찍는 것은 먼 과거 일도 아니다.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이 불거졌을 때 제보자가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조성은씨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의혹이 사실인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조씨를 배신자로 욕하는 비난이 쏟아졌다. 내부고발자가 배신자로 찍혀서 생계도 힘들다는 뉴스는 잊을 만 하면 나온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D.P’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황장수 병장의 폭언·폭행을 참지 못한 조석봉 일병이 탈영하고, 탈영병을 체포하려는 한호열 상병은 “우리가 방관했던 것, 부대 전체 조사하게 하겠다. 우리가 바꾸면 된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조 일병은 믿지 않는다. 조 일병에게는 가혹행위를 한 황 병장이나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 침묵했던 한 상병이 사실 같은 사람 아니었을까.

‘D.P’의 원작 웹툰을 쓴 김보통 작가는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군대는 비겁해질 수밖에 없는 조직이에요. 내부고발을 하면 내부고발자 꼬리표가 붙어요. 가혹행위가 싫어도 내리갈굼이 워낙 뿌리깊은 조직이다 보니 한 사람 힘으로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군대 내의 부조리를 꼭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한국일보 2015년 7월 15일자, ‘매달 60여명 탈영…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에요’)

군대를 한국 사회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읽힌다. 내부고발자가 돼서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는 조 일병이 될지, 아니면 현실에 순응하고 침묵하는 한 상병이 될지, 한국 사회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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