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망치는 유혹, 100승 감독들이 빠진 도박 '변칙 중독'[슬로우볼]

안형준 2021. 10. 1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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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안형준 기자]

도박의 맛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다저스가 벼랑 끝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LA 다저스는 10월 18일(한국시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 경기에서 패했다. 다저스는 이날 8회초까지 4-2로 리드했지만 8회말 2실점, 9회말 끝내기 실점을 하며 4-5 끝내기 역전패를 당했다. 다저스는 원정에서 치른 2경기를 모두 내주며 빈손으로 다저스타디움으로 돌아가게 됐다.

1차전에서 접전 끝에 끝내기 패배를 당한 다저스는 2차전에서는 막판 투수교체 실패로 역전패를 당했다. 경기 내내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던 1차전보다 마지막 두 번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한 2차전 패배가 더 뼈아팠다.

패착은 8회말이었다. 다저스는 이날 맥스 슈어저를 선발로 내세운 뒤 알렉스 베시아, 조 켈리, 블레이크 트레이넨을 연이어 등판시켰다. 그리고 4-2로 리드한 8회말.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훌리오 유리아스 카드를 꺼내들었다.

유리아스는 이닝 선두타자 에디 로사리오에게 안타를 내준 뒤 1사 후 아지 알비스에게 적시타를 허용했고 후속타자 오스틴 라일리에게 동점 적시 2루타를 얻어맞아 단 네 타자만에 동점을 허용했다. 2점차 리드를 안고 등판한 유리아스가 리드를 잃기까지 던진 공은 단 6개였다. 유리아스가 블론세이브를 범한 다저스는 9회초 득점에 실패했고 9회말 브루스다 그라테롤이 위기 상황을 만든 뒤 켄리 잰슨이 끝내기를 얻어맞아 패했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투수 기용이다. 디비전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변칙 작전'에 따라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해 4이닝을 투구한 유리아스는 홈에서 열리는 4차전에 선발등판할 계획이었다. 불펜 피칭을 소화할 날이 되기는 했지만 굳이 실전에서 불펜피칭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컨디션을 점검하는 차원인 불펜 피칭과 팽팽한 홀드, 세이브 상황에 등판하는 실전 투구는 절대 같을 수 없다.

올시즌 20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전체 다승 1위에 오른 유리아스는 정규시즌을 풀타임 선발로 뛴 선발투수다. 맥스 슈어저, 워커 뷸러, 클레이튼 커쇼, 트레버 바우어 등 다저스가 보유한 엄청난 에이스들의 명성을 감안하면 유리아스를 팀 내 5선발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아니다. 커쇼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경기 외적인 문제로 바우어가 시즌 중반 팀을 떠난 다저스에서 유리아스는 뷸러, 슈어저와 함께 굳건한 'TOP 3'를 이루는 선발투수였다. 심지어 정규시즌 소화이닝은 슈어저보다도 많았다. 유리아스는 불펜으로 밀려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투수였다.

유리아스는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불펜 역할을 겸해 눈부신 활약을 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유리아스가 불펜을 겸한 것은 정규시즌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인 잰슨이 포스트시즌에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잰슨은 올해 정규시즌 38세이브 평균자책점 2.22를 기록했고 포스트시즌 5경기에서 자책점을 단 1점도 기록하지 않았다. 올시즌 잰슨은 전성기를 떠오르게 하는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잰슨을 제외한 다른 불펜들이 불안하다면 유리아스의 불펜 기용에도 정당성이 생긴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저스는 트레이넨, 필 빅포드, 코리 크네블, 베시아, 켈리 등 잰슨 앞을 지킬 불펜진이 탄탄하다. 다저스는 올해 정규시즌 불펜 평균자책점 2위(ERA 3.16)였다. 포스트시즌에서도 10개 팀 중 불펜 평균자책점 2위(ERA 2.21)다.

그렇다고 유리아스를 스윙맨으로 기용해도 무방할만큼 선발 자원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풀타임 시즌을 치르지는 못했지만 정규시즌 로테이션 멤버였던 토니 곤솔린을 믿지 못한 로버츠 감독은 그를 포스트시즌에서 선발로 기용하지 않고 있다. 곤솔린을 제외하면 다저스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선발 자원은 슈어저, 뷸러, 유리아스 단 3명 뿐. 다저스는 벌써 불펜인 크네블을 벌써 두 번이나 오프너로 기용했다. 선발이 부족해 오프너까지 쓰고있는 팀이 그나마 있는 선발 중 한 명을 갑자기 불펜에 집어넣어 다 잡은 경기를 패한 것이다.

극적인 승리에 따른 결과론으로 '성공한 작전'이 됐지만 사실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슈어저를 마무리투수로 기용한 것도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슈어저는 분명 다저스가 가진 가장 강한 투수지만 선발등판해 7이닝을 던진 뒤 이틀밖에 쉬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휴식일 다음날임에도 빅포드와 베시아, 켈리 등 충분히 1이닝을 막을 수 있는 불펜들을 벤치에 앉혀두고 8회 잰슨, 9회 슈어저를 기용해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 결과 슈어저는 다시 이틀 휴식 후 등판한 이날 2차전에서 4.1이닝 79구만에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변칙과 임기응변이 수시로 이뤄지는 무대가 포스트시즌 단기전이기는 하지만 기용 가능한 자원이 있음에도 굳이 순리를 벗어나는 운영을 하는 것은 결국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다저스는 이미 단기전에서 에이스급 선발투수를 지나치게 기용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2010년대 커쇼를 통해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하지만 지금 로버츠 감독은 커쇼에게 한 이닝을 더 맡기고 마무리도 맡기던 당시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투수 기용을 하고 있다. 선발투수에 대한 과신인지 불펜에 대한 불신인지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

로버츠 감독의 투수 기용을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지난해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맞대결 상대였고 올해 디비전시리즈에서 '광탈'한 탬파베이 레이스의 케빈 캐시 감독이다.

캐시 감독은 지난해 선발이 부족한 팀 사정 속에서 3인 로테이션을 가동했고 불펜 3인방에게 의존하는 투수 운영을 선보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쓴 고육지책으로 월드시리즈 준우승의 달콤함을 맛본 캐시 감독은 올시즌 작년보다 가용 자원이 많았음에도 또 변칙에 기대는 투수 운영을 고집하다가 결국 '와일드카드'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패했고 아메리칸리그 승률 1위였던 탬파베이는 단 4경기만에 가을야구를 마쳤다.

남들과 다른 변칙으로 따내는 승리는 정석을 지키며 얻는 승리보다 더 짜릿하다. 하지만 변칙은 정석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르는 마지막 선택지이자 큰 위험을 안고 치르는 모험이고 도박이다. 도박으로 얻는 승리의 쾌감에 중독된다면 결국 자신과 팀을 망치는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다.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캐시 감독은 정규시즌 100승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팀의 가을을 망쳤다. 과연 정규시즌 106승을 거둔 로버츠 감독은 남은 시리즈를 어떻게 치를지 주목된다.(자료사진=데이브 로버츠)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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