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수치와 인간의 염치

한겨레 2021. 10. 1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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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마다 수업에서 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있다.

대학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엄격히 조사한 것이 유독 서울대 교수들이 많이 적발된 이유라는 서울대 총장의 변명 아닌 변명을 듣자니, 몇년 전 유령학회 참가 실적을 가장 많이 낸 대학도 바로 여기였던 과거가 떠오른다.

교수의 직계 가족을 학위 시험에서 면제하는 규정이 제정됨으로써 생겨난 '대학과두제'가 대학 자체의 급격한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이 대학의 몰락이 아니라 사회의 몰락이라 나는 다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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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김율 대구가톨릭대 교수(철학)

학기 초마다 수업에서 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있다. 이른바 학문 진실성 교육이다. 표절이란 무엇이고 왜 표절하면 안 되는지, 조별 발표에서 책임은 어떻게 나누고 무임승차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세한 사항을 학생들에게 일러준다. 번거로워 보여도 이 과정을 거치는 데에는, 대학 사회가 학문 진실성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공부의 염치’를 심으려는 욕심도 있으나, 기성세대의 공허한 울림인 ‘과정의 공정’을 최소한 수업에서나마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가 크다.

교수들이 고등학생 자녀의 스펙용으로 제 논문에 자녀 이름을 공저자로 넣어 발표했다는 국정감사 소식은 이러한 욕심과 의도가 순진했음을 폭로하고 만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의 가족 스캔들이 말해주듯, ‘평등’과 ‘공정’과 ‘정의’가 각 사회 그룹에서 따로 작동하는 형식적 규범으로 전락한 지는 오래다. 어떤 그룹에서는 반칙인 것이 다른 그룹에서는 공정일 수 있으니, 이제 문제는 말의 연결을 믿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틈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것일 터. 아니나 다를까, 국감이 밝힌 교수들의 자녀 논문 공저 실태는 그 틈이 얼마나 깊은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국감이야 문제를 새삼 환기시켰을 뿐, 자신이나 동료 교수의 논문에 자녀 이름을 올리는 교수 사회의 일탈은 이미 수차례 보도된 바 있다. 시끄러운 이목이 사라지면 물렁한 규정으로 덮고 지나갔을 뿐이다. 적발된 수의 절반을 차지한 서울대학교의 총장이 부끄럽다고 했으나, 나는 믿지 않는다. 내부 주의와 경고에 그치는 징계라면, 누가 그 일을 마다하겠는가? 사죄한다고 하지만 결코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그들은 사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염치가 없는 것이다. 부끄럽다면 학문 진실성을 파괴하고 학벌을 대물리려 한 교수들을 파면하라.

아무 기여가 없었던 경우는 물론이고, 교정 같은 형식적 기여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해도 처벌이 달라질 이유는 없다. 고등학생이 스펙용 논문을 각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과 함께 작성할 기회를 얻은 것 자체가 이미 특혜인 것이다. 교수의 직위를 사적 이익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대학원생 논문을 착취하거나 연구비를 유용하는 악덕‘업자’ 교수와 다를 바 없다.

대학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엄격히 조사한 것이 유독 서울대 교수들이 많이 적발된 이유라는 서울대 총장의 변명 아닌 변명을 듣자니, 몇년 전 유령학회 참가 실적을 가장 많이 낸 대학도 바로 여기였던 과거가 떠오른다. 공치사가 아니다. 이 나라 대학을 이익의 카르텔로 변모시키고 단단히 유지하는 데에는 서울대의 공이 크다.

프랑스의 사학자 자크 르 고프는 중세 대학의 몰락 과정을 분석하면서 교수 사회의 세습귀족화 경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교수의 직계 가족을 학위 시험에서 면제하는 규정이 제정됨으로써 생겨난 ‘대학과두제’가 대학 자체의 급격한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이 대학의 몰락이 아니라 사회의 몰락이라 나는 다만 두렵다. 사태를 되돌릴 수 있는 것이 대학 총장의 사죄일지, 만시지탄의 읍참마속일지, 면밀한 제도 정비일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남들 일할 때 팔자 좋게 공부할 수 있었던 부끄러움, 실력 있는 많은 분들이 강사로 고생할 때 운 좋게 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던 미안함, 이 인간의 염치는 쉽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파렴치의 뿌리는 깊고 질기다는 것. 그래서 이 지면을 빌려 공적으로 말해야겠다. 교수 특권의 체계적인 해체는 사회 개혁의 씨앗이다. 이 사태를 그 기회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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